김석환 스케치전 ‘북한산과 한양도성전’
김석환 스케치전 ‘북한산과 한양도성전’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0.01.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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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인사아트센터 6층서 2월5일부터 10일까지…“한양 성곽의 가장 빼어난 장면”
김석환 스케치전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이 2월5일부터 12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김석환 스케치전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이 2월5일부터 12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건축가 김석환 스케치전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이 2월5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6층에서 열린다.

김석환 작가는 그동안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지속적으로 그려오면서 북한산과 한양도성전, 북한산전, 북한산국립공원전, 북한산국립공원진경전, 도봉산전 등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작년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북한산전’에 이어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하나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그 연계성과 한양 입지의 빼어남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자연지형과 일체로 형성된 성곽의 축조미 및 그 성곽과 주변 산세가 함께 어우러진 한양도성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남아 있는 성곽 중 가장 빼어난 장면들을 추가해 그렸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김 작가는 “한양은 삶터로서 특별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늘 좋은 기운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그 존재를 잊고 살아가기 쉽다”면서 “제가 그린 그림들은 가로 5.4m 크기의 대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장에서 직접 실경을 대하며 제작한 것이다. 빼어난 경치와 장쾌한 기상을 갖춘 북한산과 입지와 조화되도록 구축한 한양도성의 면모를 현장의 필치로 생생히 담아온 그림들을 감상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석환 작가의 <제2회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을 열면서 전문.

다시 여는 북한산과 한양도성전

2014년 서울도서관 기획전시실에서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을 한 이후 같은 제목으로 다시 전시를 하게 되었다. 우선 그 이후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계속해서 그려오면서 새로운 작품들이 많아졌고 그 때 수록한 그림들도 좀 더 잘 그릴 요량으로 다시 그린 그림도 많아서 그것들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필자는 지난 10여년간 선조들의 터를 보는 높은 안목으로 도읍으로 정한 한양의 빼어난 입지를 모두 실경으로 담아두고자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줄곳 그려왔다. 그처럼 오랫동안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바라보면서 점차 시야가 트여짐을 느꼈고 선조들이 맨 처음 도읍을 정할 때 시선이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입지의 빼어남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그 동안 북한산을 그려오면서 한양의 입지와의 연관성을 의식해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작업을 해 왔다. 그리고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지속적으로 그려오면서 북한산전, 북한산국립공원전, 북한산국립공원진경전, 도봉산전 등 북한산 전체의 그림들과 한양도성을 그린 그림들로 여러 차례 전시를 해 왔다. 이번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은 2014년 서울 시청 기획전시실 전시 이후 6년만인데 전에 전시를 하면서 갖춰졌던 그림들과 그 후 추가로 작업 한 그림들을 선보이게 되었다.

한양의 입지와 한양도성

필자가 그동안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그려 온 것은 지리적 특별함과 빼어남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새 나라를 개창한 조선의 태조는 여러 각지를 물색한 끝에 한양을 새 도읍으로 정하였다.

한 나라의 도읍을 정하는 일인 만큼 그 과정에서 아주 신중히 입지를 살피었다. 그 시대에는 풍수지라사상이라는 입지를 살피는 아주 확고한 사상과 신념이 있었다. 명당은 결국 땅의 형국이 빚어내는 것이고 터와 연관된 산과 강의 형세가 그 우열을 가려지게 한다.

선조들은 터를 보는 눈이 좋았다. 소위 명당을 찾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옛 시대 사람들은 터를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다녔다. 그처럼 명당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입지가 중요했다. 작은 집을 지을 때도 그랬다. 터가 규모 건물의 성격 등 모든 것을 규정했다. 궁궐에 맞는 터가 있고 집 지을 때 맞는 터, 서원에 맞는 터가 따로 있다고 여겼다. 나는 그동안 전국의 우리 전통건축을 많이 돌아보아서 그 실제의 차이를 느끼고 있다.

한양은 풍수상의 명당과 길지로 꼽히는 입지조건과 형국을 갖추고 있다. 한양도성은 사신사의 풍수 형국에 기초해 조성되어 있다. 한북정맥을 타고 흘러온 북한산의 준수한 기세와, 그것과 이어진 산세가 도읍의 삶터를 양팔로 감싸 안듯 백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 등 사사산이 둘러치고 넉넉한 도읍의 터전을 크게 휘돌아가는 한강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명당수가 흐른다.

건축가로서의 나의 직업은 땅을 살피는 것과 큰 연관이 있다. 그것은 나이를 먹고 건축가로 살아가는 연륜이 늘어날수록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종주를 할 때 가졌던 역사와 지리의 관심이 커지면서 한양의 입지에 대한 관심이 한층 커지게 되었다.

나는 한양이 도읍으로 들어서기전 그 땅을 맨 처음 대하던 풍경이 몹시도 궁금했다. 맨 처음 도읍지를 물색하던 발걸음에 비친 본래 지세대로의 모습은 너무도 좋았을 것이다. 오늘날 내가 느낀 것보다 훨씬 맑고 아름답게 펼쳐보였을 것이다. 그 넉넉한 터전을 대하며 가슴이 트여 후련해지고 그 뒤로 펼쳐진 북한산 산세의 기상이 느껴졌을 것이다.

예봉산, 검단산 등 서울 바깥의 산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면 서울과 인근의 지리적 형세가 한 눈에 펼펴보인다. 거칠 것 없이 멀리 트여나가는 시선에서 너른 터전을 겹겹이 둘러친 산세의 준수함과 크게 휘돌아가는 물줄기가 어우러진 한강이 태초의 숨결로 어우러져 보인다. 그리고 그야말로 정말 천하의 빼어난 터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울을 대도시라는 말뜻 그대로 그 선입견으로 대하기 쉽다. 그리고 그처럼 빼어난 입지 위에 살아감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기 쉽다.

명당으로서의 한양은 북한산의 정기와 너른 한강의 물줄기가 한양의 입지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사사산이 둘러쳐 감싸 않아 안온함을 지닌다. 그리고 도성내의 건축을 할 때도 그 입지의 기운이 골고루 뻗쳐 있도록 하여 궁궐까지 다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선조들의 삶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세상 만물의 조화, 특히 음양의 조화를 중시했었다.

지금은 천하 명당임을 금세 이해할 수 있지만 도읍을 찾아 헤맬 당시에는 쉽게 뚜렷이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곳 저곳을 물색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보면 이 이상 좋은 곳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명당의 구조와 시각에 맞춰 도성, 궁궐, 건물 등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그 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한양도성이다. 한양도성이 굳건히 구축되어 그와 연관 된 사사산의 의미와 북한산과의 관계, 그리고 한강의 살가움이 확연해졌다. 

한양도성은 사사산의 지형을 토대로 그 산의 능선을 이어 성곽을 쌓았다. 따라서 지형이 방비 시설로서 성곽의 일차적인 몸체가 되고 있다. 그리고 산세의 흐름에 맞춰 축조된 성곽은 지형의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다. 성곽을 안쪽에서 보면 여장이 일정한 높이로 보이지만 성곽 바깥쪽에서 보면 지형의 굴곡과 경사도 등 축조할 당시의 지형조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즉 지형에 따라 굴곡의 정도와 경사의 완급을 조절하고 커다란 바위가 놓인 곳은 그것을 성곽의 일부로 삼기도 해서 본래 지형과 자연스럽게 일체화 되도록 했다.

한양도성의 성곽 형체는 그 자체가 빼어난 조형미를 띠고 있다. 성곽을 쌓을 때 그것이 지나는 구간의 지형에 순응되도록 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성곽의 윤곽과 볼륨에 지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전체적으로 성곽의 형체가 자연스런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성곽 자체는 인공의 축조물로서 인위성이 드러나게 되지만 그것이 지형과 일체화 되면서 산세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나아가 본래 입지가 갖는 산세의 풍치와 인공의 멋이 가미되고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인 조형적 아름다움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아울러 성곽은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듬직한 축조의 미와 섬세한 공예미가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한양도성이 지나는 산세와 원근의 장엄하고 수려한 산들의 풍광이 결합되면서 성곽의 풍치가 한층 크게 느껴지게 된다.

빼어난 산수의 풍치

북한산은 세계적인 명산이다. 세계의 산 가운데 당일 탐방객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북한산의 특별함은 장대한 바위 암봉에서 뿜어나는 기세에 있다. 그리고 산세의 넉넉함, 능선과 봉우리, 계곡이 어우러진 수려함을 갖추고 있다. 주능선, 비봉능선, 의상능선, 염초봉능선, 응봉능선, 상장능선, 숨은벽능선, 진달래능선 등이 갈래를 이루며 뻗쳐나가고 그 능선 곳곳에 문수봉, 보현봉, 의상봉, 용출봉, 족두리봉 등이 솟아 기세를 북돋우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정상부에서 정점에 다다른다.

북한산과 한양도성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양도성을 감싸는 사사산은 별개의 산으로 구분해 불리지만 전체적으로는 북한산에서 뻗쳐진 지형의 흐름과 맥락이 닿아 있다. 그리고 북한산은 조종산으로 기의 맥이 흐르고 있다. 한양은 그러한 입지를 바탕으로 수려한 산수 풍광을 이루고 있다. 한양도성의 남쪽 경계지점인 남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바라보면 도심을 둘러싼 지형지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며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남산은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오는데, 그 곳에 올라온 관광객들은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경관을 놀라워하며 환호성을 지르곤 한다. 풍수지리상의 명당의 조건을 형성하는 서울의 주변 산들과 입지는 그처럼 누구나 깜짝 놀랄 만한 경관을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한양(서울)은 거대 도시로 변모해 왔다. 한양도성과 성저십리로 이루어졌던 한양은 한강 이남과 김포 등지까지 광활히 확장되어 원래 입지 형국의 의미가 희미해지게 되었고,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망과 빌딩숲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산과 강이 어우러진 특별한 경관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북한산을 오르거나 내사산의 봉우리에서 좀 더 멀리 시선을 두고 입지의 전체를 의식할 때는 여전히 그 본래의 산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자연 지형과 한양도성의 일치

한국 전통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맞은 입지에 순응하고 결합되는 것이다. 선조들은 인공적인 구조물을 만들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중시했다. 그러한 정신으로 만들었기에 결국 자연과 결이 하나로 이어진다. 전통건축은 아름답지만 형태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자연의 결에 흘러가서 특별한 형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현대의 조형 언어처럼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그 존재성을 크게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한 모습은 평이한 감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 내면의 정신은 훨씬 깊고 심원하다. 그것이 선조들의 살았던 시대의 정신이고 추구한 바였다.

사람들에게 한국전통건축에 대해 먼저 떠오르는 인상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곡선미를 꼽는다. 그런데 그 곡선은 마을을 둘러싼 산 능성이의 선처럼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자연스런 선이다. 건물의 형상이 자연지형을 닮도록 순치되어 하나의 결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선조들의 건축에 대한 그러한 태도는 그 시대에 신봉한 동양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음양사상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크게 음의 성질을 띤 것과 음의 성질을 띤 것으로 나누고 그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도록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주만물의 운행 이치에 부합되는 것으로 여겼다. 나아가 그러한 음양의 조화가 깨지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음양사상의 실천에 의해 가옥으로부터 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되어 있다.

한국의 성곽의 나라로 불릴 만큼 전국 방방곡곡에 성곽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성곽들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한국전통 건축과 같은 조형적 맥락으로 되어 있다. 한양도성을 바라보면 자연 지형 같은 자연스럽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성곽이 놓이는 지세가 굴곡지면 성곽도 굴곡지고 높낮이의 차가 크며 성곽 높낮이의 변화도 커지게 되었다. 도성을 이루는 지형의 흐름 및 형국과 하나의 결을 이루고 있다.

한양의 입지와 멋을 기록하는 작업

필자가 그동안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꾸준히 그려온 데는 한양의 입지 조건에 따른 경관을 아름답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모습들을 그림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또한 한양(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입지 조건을 가진 삶터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나의 그림 중에는 북한산 전체를 다 아우르는 너른 구도의 그림이 많다. 그러한 그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에게 시야가 넓다고 한다. 내가 북한산을 처음 그리기 시작할 때는 작은 종이에 어느 부분들을 포착해서 그렸는데 시간이 가면서 점차 전체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너른 시야로 산 전체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리려면 우선 산세가 시야에 잘 들어와야 하고 시선이 열려 있어야 한다. 서울과 인근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전체의 산세나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모른 채 지나칠 수도 있다. 내가 너른 시야를 갖게 된 것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단독 산행에서 비롯되었다. 지도와 산세를 비교해가며 길을 똑바로 찾아가려 애쓰는 사이 단련이 된 듯 했다. 그 이후 북한산을 오를때는 전체가 더 쉽게 포착되었다.

나는 북한산을 우리나라의 산 가운데 가장 아름답게 생각한다. 우선 북한산은 암봉의 기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크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북한산은 파르테논 신전 같은 고전건축의 느낌이고 금강산과 설악산은 바로크나 로코코 건축 같은 느낌으로 느껴진다. 바흐와 모차르트 음악과도 비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강산과 설악산을 훨씬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그 산들도 빼어나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북한산의 느낌이 주는 특별함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설악산 금강산도 아름답지만 결이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북한산을 한양의 입지와 연관해 새롭게 바라보면서 한양의 공간구조와 경관 등 모든 측면에서 북한산이 갖는 의미가 한층 중요시되었다. 북한산의 그 기상은 한양의 지세를 북돋우고 삶터로서의 한양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기상을 불어넣어주며 깨끗하고 아름답게 한다.

내 안에서 그런 생각이 확산되고 한양의 입지적 중요성이 점차 더 크게 다가오면서 북한산과 한양의 입지 전체를 실경으로 담아두려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고장 주변에 이 터의 기운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 어떠한지를 그리고 얼마나 좋은 땅에 살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 시대 대도시로 변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빌딩만 가득 들어차 보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지금도 그 형세가 살아 있고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될 때 처음 이 터를 도읍의 터로 바라볼 때처럼 다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경조오부도 등의 그림들은 현대에 지도와 같은 구실도 한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과학적으로 측량한 현대의 지도에 나타난 공간들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틀린 지도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산세와 물길이 만나는 입지 측면에서는 현대 지도에서 알 수 없는 입지형국이 확연히 들어온다. 당시에는 그 점이 중요시 되었던 것이고 지급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지도에 나타난 산줄기 강줄기는 관념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 나는 그런 상황을 의식하며 선조들의 그림이나 지도에 관념적으로 묘사된 대상들의 실제 모습을 그림에 담아 한양의 입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하고자 했다.

필자는 북한산과 한양도성의 전체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목차를 정하고 작업을 해 왔다. 북한산은 전경, 원경, 주능선, 주요 봉우리 및 계곡, 내경, 성문 및 성곽, 도봉산의 목차를 정했고 한양도성의 근간을 이루는 산과 강, 성곽, 궁궐 및 종묘사직, 조선시대의 모습을 띤 가옥들을 그렸다.

필자는 그러한 그림들을 그리기 위해 늘 현장에서 작업을 해 왔다. 북한산 그림 들 가운데 의상봉에서 본 북한산 전경 같은 큰 그림은 의상봉을 수 없이 오르내리며 작업을 했다. 그런데 한양도성이 지나는 산들은 도시의 빌딩들에 가려 산의 전체적인 형체를 제대로 보기 어려운 곳도 있다. 그런 곳은 건물이 들어차지 않은 정상부의 형세를 바탕으로 산자락 부분의 빌딩이 놓인 지형의 굴곡과 입지의 구조를 살려 본래의 기세를 살리고자 했다.

겸재가 그린 인왕산도 지금은 전체 면모를 시원스레 바라볼 곳을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 인왕산 그림을 그리면서 겸재는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에서 작업을 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낙산은 거의 다 건물에 가려져 있고 남산도 산자락이 빌딩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또한 한양의 변천을 살펴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백악산은 상대적으로 본래의 산세가 잘 드러나 보이지만 그 역시 뿌리 부분은 도시 풍경과 겹쳐 있다.

한양도성은 어디서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보인다. 특히 북한산과 어우러지며 넉넉하고 큰 기세로 느껴진다. 너른 시각으로 대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모습들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낙산 구간을 그릴 때나 남산 구간과 인왕산 구간을 그릴 때도 준수한 북한산의 모습이 배경으로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 입지의 바탕에 산과 강이 있다. 한양(서울)은 준수한 산세와 크고 넉넉한 물줄기가 어우러진 빼어난 삶터이자 그 자체가 그림의 소재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한양(서울)은 삶터로서 특별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늘 좋은 기운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그 존재를 잊고 살아가기 쉽다. 필자가 현장의 필치로 포착한 북한산과 한양도성의 그림들을 대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소중함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년 1월

一梅軒에서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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