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고택 秋史古宅
추사고택 秋史古宅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8.28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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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13 - 한국의 名家 13/14
▲ 왼편의 너른 마당을 둔 사랑채
▲ 한재 터·울건축 김석환 대표

[나무신문 | 한재 터·울건축 김석환 대표] 입지
추사 고택이 있는 예산의 입지는 지리적으로 매우 특별한 면모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지형의 흐름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데 비해 이곳은 그와 반대로 북쪽으로 수계를 따라 완만히 경사져 있다. 예산은 평야지대에 있어 넉넉하고 평온한 기운이 그득한 고장이다. 아산만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동남으로 갈래를 이루며 결합돼 있는데, 그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삽교천이 북사면의 나지막한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흐르는 평야지대에 예산이 위치해 있다. 서측에는 가야산과 옥양봉으로 이어진 덕산 지맥이 지나고 남쪽에는 금북정맥이 가로막고 있는데, 서남 방향에는 홍성이 있으며 동쪽에는 아산이 위치해 있다.
추사 고택은 낮은 구릉을 등지고 앞에는 너르고 야트막한 들녘이 양지녘 햇살을 머금고 있어 살가운 삶터의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인근 들녘이 낮게 펼쳐져 있는 가운데 인근 마을로부터 떨어져 있는 추사고택 뒤 지형만이 상대적으로 돋아 있어 나지막한 산세를 형성하고 있다.

 

▲ 사랑채의 추사체 주련

추사 김정희 
추사고택은 조선 후기 명필로 꼽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살았던 집이다. 추사는 병조판서를 지낸 아버지 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뒤에 큰아버지 노영의 양자로 들어갔다. 추사는 이미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이 났다. 그리고 당대 실학의 거두 박제가(1750~1805)에게서 배웠다. 추사의 실학은 바로 그에게서 비롯된다. 그의 명성은 25세 때 청나라 연경으로 가는 사행에 그의 아버지가 동지부사로 가게 됐을 때 자제 군관으로 동행해 중국의 석학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활짝 꽃피웠다.


추사는 정치적 부침을 겪어 귀양살이 등 험난한 역정을 겪기도 했으며, 세상에 알려진 추사체는 말년에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완성됐다. 온갖 풍상을 겪은 후 일가를 이룬 것이다.

 

▲ 솟을대문

왕의 은덕이 배인 격조 높은 가옥 
이 집은 조선후기 서예의 대가로서, 추사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의 고택이다. 추사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추사체를 완성한 서예가로서의 업적인데, 그런 예술가라는 사실만 생각하면 가난한 선비가 연상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릴 수 있는 명문의 자손이었다. 경주 김씨인 추사 가문이 세가를 이루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증조부가 영조의 딸인 화수옹주와 결혼해 부마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김한신이 영조의 사위가 돼 경주 김씨가 훈척 가문이 됐으며, 그가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자 조정에서 축하할 정도의 세도가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영조가 특히 화순옹주를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순옹주는 남편이 세상을 뜨자 상심해 식음을 전폐하며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그 때 영조는 왕명이라며 음식을 들라 했으나 듣지 않자 크게 노하며 상심했다고 한다.

 

▲ 안채 전경

배치 및 공간구조
길을 지나 추사 고택 앞 너른 마당에 다다르면 솟을 대문이 올려다 보인다. 그 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가 오른쪽으로 약간 물러서 있고 그 너머로 안채의 일곽이 조금 보인다.


그 안 너른 터에 사랑채와 안채가 전후로 놓여 있는데 대문과 사랑채는 가깝지만 건물 좌측이 너른 마당으로 비워져 있어 평온한 기운이 감돌며 우측 후면에는 원래의 야트막한 자연 지형 그대로 돼 있다. 그리고 후면으로 돌아가면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이 놓여 있다. 사당에서 우측 담장을 따라 오가는 경사 길에서는 담 밖의 자연 풍경이 어우러진다.

 

사랑채는 ㄱ자 평면으로 1칸 대청을 사이에 두고 큰 사랑 부분과 작은 사랑 부분이 직교하고 있는데 대청이 작고 방을 크게 두어 대청보다 방의 기능이 중시돼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그리고 좁은 대청의 개방감을 얻기 위해 대청 쪽으로 난 문들을 모두 활짝 열수 있게 들어열개로 해 놓았는데 문짝을 내렸을 때의 보온과 폐쇄성을 위해서 문에 두꺼운 맹장지를 발랐고 중간에는 빛이 통하도록 불발기창을 냈다. 또한 사랑채 전면은 툇마루가 바깥 켜를 이루며 빙 둘러쳐 있는데 바닥 높이가 높아 루에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며 그에 따라 건물도 높아져서 당당하고 권위적인 느낌이 든다. 사랑채 기둥에는 추사 글씨의 주련 편액 등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추사가 ‘석년(石年)’이라고 글씨를 새겨 세운 돌이 있는데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해시계이다.

 

▲ 안채 전경

안채는 짜임새 있는 공간미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반듯한 튼 ㅁ자 구조의 틀 안에서 각각의 방과 대청의 위치 등이 신분적 위계와 기능에 알맞게 구성돼 있다. 그리고 전체 외곽이 6칸×5칸으로 구성된 가운데 안측에 3칸×3칸 크기의 마당이 놓여 있는데, 건물이 모두 연결된 채 마당을 둘리 싸고 있어 내밀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안마당은 안채의 영역성과 공간적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안채에서 가장 활달하게 느껴지는 대청은 2단 기단 위에 놓여 마당으로부터 바닥을 높이고 열린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로써 주인과 하인의 신분적 위계를 표출할 뿐 아니라 시원스런 개방감을 얻고 있다.

 

▲ 높낮이가 다른 안채 일우

안채의 공간 구성은 부엌과 연결된 큰 방을 안방으로 하고 중앙 대청 건너의 방을 건넌방으로 꾸몄다. 그리고 마당 건너의 행랑 부분에는 하인의 거처와 곳간 등을 두었는데 방 등의 솔리드한 매스와 대청 및 헛간 등의 보이드한 공간이 균형감 있게 결합돼 다채로운 느낌을 띠며 반듯한 형식 안에서의 채움과 비움, 공간의 순환성 등 상반적이고 대비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입구 대문에서부터 대청까지 몇 개의 단에 의한 위계적 구성이 돼 있어 진입하면서 공간의 상승감이 느껴진다. 또한 지형적 높이 차이에 의해 생성되는 아궁이 및 다락 공간 등이 입체적인 공간감이 느껴지게 하고 동선에 의해 공간의 흐름을 발생시키고 있다. 안채의 지붕은 대칭적이면서도 좌우의 높이가 각기 조금 다른데 그것은 좌우측 익랑의 방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친근한 공간과 부재의 물성 
추사고택은 넉넉하고 편안한 너른 마당의 고요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흙마당과 함께 건물에 쓰인 부재의 물성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당은 돌담과 은행나무 작약 등 적절히 심어 놓은 작은 화초 등이 어우러져 공간을 격조 있게 한다. 몸채와 지붕에 쓰인 부재들은 실용적이고 맵시 있게 쓰여 있으며, 세월을 머금고 맑게 빛나는 목재는 맑은 햇살을 받아 투명하고 맑게 보인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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