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면 고향 아버지가 떠오르지~ 느릅나무
너를 보면 고향 아버지가 떠오르지~ 느릅나무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1.07.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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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44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느릅나무(Elm)

멀리서도 너의 수수한 모습에 이젠 금방 너임을 알아차린다. 빗살 같은 잎맥과 얼비치는 씨앗을 품은 듯한 연녹색 동그란 꽃-마치 잎 같은 느낌을 줌-, 그리고 몸뚱이 살갗(樹皮)를 보면 세월의 무게가 풍화(風化)되어 하얀 막걸리 세례를 받은 듯 허연 거죽을 뒤집어 써서 “아하~ 저건 느릅나무구나” 속으로 환호를 하며, 가까이 가서 이름표를 확인하고 수피를 유심히 보곤 한다.  

어쩌면 우리네 아버지가 어려움 있을 때나, 힘겨울 때나, 고독에 절을 때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고 더러는 옷에 조금 부어 흘린 자국을 지니고서 집으로 쓸쓸히 귀가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서민풍의 나무임에 틀림없다.  

실버메이플은 이른 봄이면 쬐그만 젖몽오리 같은 꽃을 잉태할 새끼들을 잔뜩 업은 채로 나와서 뒤이어 희끗한 몸뚱이로 로맨스그레이(Romance Grey)를 구가하는 데 비해, 이 나무는 봄부터 좀생이 잎 새끼들을 등에 업고서 바람을 맞으며 술자국이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서있는 하늘과 땅을 바라는 외로운 서생(書生)쯤이나 될까? 두 나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면 더 서민적인 쪽으로 느릅나무를 놓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저러나 느릅나무 껍질은 약효가 있다고 고향 오일장에 나오더니, 그 막걸리 색깔의 수피 풍화는 무슨 생리 작용으로 그리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고목에 가깝게 직립한 느릅나무(Siberian Elm, Ulmus pumila)가 우듬지에 연두색 수관(樹冠, Crown)을 쓰고 막걸리 자국이 남은 듯 한 껍질을 두른 채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사래 긴 밭을 매고 소 몰고 돌아오시는 우리네 아버지 생각에 간절하고도 숙연해 진다.    

 

너를 보면 고향 아버지가 떠오르지~ 느릅나무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살았어
자식 두 어깨 세워 주려
퇴박을 맞고, 주눅이 들어도
암묵으로 살았어

 

저 하늘 바래기 무수한 잎 새끼들 받쳐주느라
제 등이 굽어도 아프단 말 한마디 못하고서
멀뚱멀뚱 먼 산만 바라보았어

 

그러던 어느날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간
옷섶에 허연 자국을 뒤집어 쓴 채
그래도 괜찮다~
네들만 살면 난 괜찮다~
독백하며 넘어오던 서낭당은 
그리도 길었으리

 

그러나 그날은 육자배기라도 부르고픈
흥에도 겨웠으리

 

서진석 박사
서진석 박사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