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 마을(村)에서
메이플 마을(村)에서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1.04.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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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40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슈가 메이플
슈가 메이플

메이플 마을(村)에서

아이, 가을 단풍 참 고와라~

내 고향
내장(內藏)에서 설악(雪嶽)까지 홍릉(洪陵)에도 어김없이 
고로쇠, 복자기, 당(唐)단풍 붉고도 붉게 물들더니만…

어이, 단풍나무(maple) 참 많기도 하이~

로맨스 그레이
실버 메이플

버즘나무 잎새   
노르웨이 메이플

적상(赤裳) 여인
레드 메이플

붉은 박가분(朴家粉) 분장(粉粧)한
슈가 메이플

가을 들면 점박이 병 
꼭 앓고 마는
크림슨 킹 메이플

홑옷 한 꺼풀 풀어 헤치는
페이퍼바크 메이플

내겐 모두가 가을 한철 
고혹적인 빨강 망또를 걸치고 오는 
마법의 천사들인걸~

오늘은 옛 고향집
은은한 물결무늬 
대청 마루로 다가와
내 곁에 눕네~

 

슈가 메이플(Sugar Maple)

가을로 들어가는 철(季節)이면 어느 나무가 단풍이 일찍 드는지, 또 선연(鮮然)하게 드는지 궁금해 진다. 내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바리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따라 흥얼거리며, 수목이 많이 있는 세미트리를 찾는다. 발갛게 조막손 같은 단풍나무 잎이 그 안면(顔面)에 홍조를 띠고 있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란 말은 맞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서 이름표(Tag)를 들여다 보니, 그 나무가 슈가메이플이란다. 이 곳 세미트리에서 제일 일찍 단풍이 든다. 일찌감치 잎파랑이(葉綠素)를 빨강 색소로 바꾸어 겨울에 대비하는 예민하고도 영리한 나무라고 해야겠지… 그렇지만 이 성숙한 단풍, 조락의 면모를 보이는 단풍나무의 가계(家系)는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가족처럼 많다. 세미트리에서 ‘Aceraceae’科-‘Acer’屬 이름으로 선 메이플(Maple)이 몇 발자국 지나치면 고목으로 마주쳐지기 때문에 Acer 집성촌에 온 느낌이다. 이들을 보노라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읊은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겨울이 갈 무렵 제일 먼저 봄을 맞고 싶어 애기 젖꼭지처럼 볼고레한 꽃봉오리를 매달고 3월이 다 가면 은빛 꽃술을 내밀어 하늘을 덮을 듯한 기세로 서 있는 실버 메이플(Silver maple), 껍질이 다소 두툼하니 넙적하면서 세로 길이로  갈라진 몸체(줄기)를  보이는 슈가 메이플(Sugar maple), 실버 메이플보다 다소 늦게 빨간 봉오리를 3개 정도 뭉쳐 내어미는 레드 메이플(Red maple), 추운 지방에서 유래한 탓인지 껍질의 골이 촘촘하면서도 길게 세로로 나있으며, 아직은 겨울 무드이지만, 여름날 한창때 플라타너스 잎과 비슷한 잎을 매어다는 노르웨이 메이플(Norway maple), 언뜻 보아서는 노르웨이 메이플과 수피와 잎이 비슷한데 가을 들어 잎에 검은 큰 얼룩반점이 져서 안쓰럽게 하는 크림슨 킹 메이플(Crimson king maple), 매끄러운 갗을 지니고 용트림하듯 서서 유독 새빨간 단풍을 보여주는 赤丹楓(Japanese maple), 아늘아늘 자작나무 속껍질이 벗겨진 것처럼 진한 오렌지색을 띄는 얇은 종이 모양의 페이퍼바크 메이플(Paperbark maple), Norway maple과 구분이 안가는 Schwedler maple, 이외에 형용하기 어려운Vine maple, Striped maple, Moose maple 등을 대할 수 있음에… 바지런히 이곳을 거닐면서 자주 눈에 익혀, 나무 줄기, 이파리 모양, 단풍 색조 따위로 그 본 이름, 학명을 맞춰보려고 한다. 가을이 들면 다양하게 물들어 가는 세미트리를 찾아 가을꽃인 단풍을 완상(玩賞)하는 취미로 산다고나 할까?

고국에선 단풍나무 하면 당단풍, 복자기, 고로쇠가 붉게 물드는 것이 떠오르고, 산과원 ‘조경인의 숲’의 오름길에서 만나는 복자기는 마치 제가 제일 멋쟁이라도 되는 듯이 떡 버티고 빨갛게 제 몸 치장한 단풍을 보라고 자랑하던 게 생각난다. 

언제 누구한테선가 메이플 시럽은 무슨 단풍나무로 만드는 거예요? 하고 물어 오던 질문에 나무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경험이 없어 ‘글쎄요. 한번 알아보지요’하고 얼버무렸던 게 생각난다. 어릴 때 설탕과 같은 감미료를 사카린으로 한 것을 떠올리면, 실버 메이플의 학명이 Acer Saccharinum L.이고, 슈가 메이플의 학명이 Acer  SaccharumMarsh.로 이 두 수종이 시럽을 만드는데 적격이 아닐까 해 본다.    

고국에선 포도, 머루로 만든 와인이 입맛을 돋군다는데, 역시 가을엔 단풍에 취하고, 낙엽의 정취에 취하면서, 어느 날 문득 섬돌에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월하주(月下酎) 한 잔에 취해서 조용히 익어갈 일이다. 가을은 단풍(丹楓)의 계절일 뿐 아니라 조락(凋落)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서진석 박사
서진석 박사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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