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낭화
금낭화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1.06.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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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42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금낭화

좀 있으면 필 거 같으다
한냥, 두냥, 세냥
엄마 무릎에 잠들어 
헤다 헤다 다 못 헨 별떨기처럼

별이 자루에 쏟아지듯
와르르 달그락
내 안에 쏟아질 것 같으다

말간 눈망울
분홍 빛
하냥 부끄런 처자(處子)가 
기다릴 것 같으다

 

금낭화(錦囊花)~ Common Bleeding Heart
옛날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금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하는 혹부리 영감의 도깨비 요술방방이 얘기가 있다. 다분히 배금(拜金) 요소가 우리네 동화에도 담겨져 있어 슬며시 입가에 웃음이 돈다. 정초(正初)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세뱃돈을 주고 점쟁이 집에 가면 복채를 준다. 그 조그만 복주머니 같이 매어달린 꽃을 4~5월의 꽃밭에서 마주한다. 우리 집 뒤란에는 두어 무더기의 금낭화 꽃이 피어난다. 긴 활 시위처럼 생긴 대에 조록조록 연분홍 꽃이 하얀 꼬투리를 내밀며 매달려 있다. 작년 5월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바람을 동반한 시샘 눈보라에 쓰러져 허리를 펜스에 묶어 꽃이 연명(延命)하도록 해 준 아픈 기억이 함께 하는 꽃이다. 한창때 여인이 제 몫을 하려고 연분홍 꽃을 이쁘게 피우는 것이려니~ 하면, 내 집에 오는 복주머니는 덤으로 선사하려는 의지가 엿보여 가만히 그 볼에 살짝 손을 대어본다. 연분홍 꽃 밑쪽이 조그만 펜촉처럼 하얗게 늘어뜨린 꼬투리를 지은 양도 예쁜 액센트로 가지는 데다가 연분홍 얼굴에 양갈래머리를  위로 들어올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있어, 왈가닥 루시 또는 발랄한 빨강머리 앤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청춘이 그러하듯 황무지에서 풀린 땅의 숨결로 숭고한 생명을 피우기 시작하는 4월도 보낼 무렵 핀다. 계절이란 그렇게 시간의 끈을 놓치지 않고 또 서운하고도 무심히 피었다 지는 화사한 모란, 작약을 피울 신록의 5월로 가는 꽃마차의 꿈을 꾸는 것이리라!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