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식물원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식물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1.08.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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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84 - 권주혁 박사
식물원 연못 옆의 일본 정원. 겨울이므로 수목의 잎이 없고 잔디도 거의 말라 있다.

흑해(黑海)에 면한 중동부 유럽에 있으면서도 라틴계의 혈통을 가진 나라인 루마니아는 라틴계답게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수도 부쿠레슈티는 오랫동안 공산주의 독재자의 통치를 받아서인지 시내에는 소련의 위성 국가로 있었을 때 건축된 단순하고 큰 소련식 건물들이 자주 보인다. 시내에 위치하고 있는 부쿠레슈티의 식물원은 잘 설계된 식물원이다. 지금으로부터 160여년전인 1860년에 내과의사인 다빌라(Carol Davila)는 부쿠레슈티에 약용 식물을 주로 심은 조그만 식물원을 만들었다. 이 식물원은 잠시 문을 닫는 등 우여곡절 끝에 1874년에 부쿠레슈티 대학으로 장소를 옮기고 식물학자인 디미트리 브란드자(Dimitrie Brandza) 교수가 관리하게 되면서 1882년에는 식물 박물관도 만들어 지고, 본격적으로 식물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 1884년에 이 식물원은 오늘날의 위치로 옮겨졌고  1891년에는 첫 온실이 완성되어 발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6년에는 시내에 진주한 독일군이 식물원을 점령하고 주둔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편인 추축국에 가담한 루마니아는 부크레슈티 북쪽의 플로에스티 유전지대에서 나오는 기름을 독일군에 공급함으로써 독일이 전쟁을 계속 수행하도록 도왔다. 그러므로 미군은 중(重)폭격기인 B24 리버레이터를 포함한 많은 장거리 폭격기를 이용하여 플로에스티 유전을 폭격하였다. 이 와중에서 1944년 4월4일, 연합군의 폭탄 74발이 식물원에 떨어져 식물원의 건물들과 온실 등이 파괴되면서  식물 표본 60만여개가 소실되었다. 이렇게 폐허가 된 식물원은 1960년에 원상으로 재건되었고 1976년에는 오늘날 보는 온실이 세워졌다. 그리고 부쿠레슈티 식물원의 자랑인 식물 박물관은 1978년에 다시 개원하였다. 이 2층 박물관은 15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고 2만여종의 각종 식물의 씨앗, 열매, 식물화석, 그리고 1944년 폭격에 살아남은 야자수의 줄기도 전시되어 식물학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의 유명한 식물 세밀화가(細密畵家) 산토코노(Angiolina Santocono: 1961년 사망)가 그린 수많은 식물화를 보면 마치 어느 미술관에 와있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식물 세밀화를 그리고 싶어 회사에서 완전 퇴직한 2015년말부터 식물세밀화를 공부하였으나 잎사귀 하나를 그리는 데도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도중에 포기 하였다. 그러나 시간만 허락된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일부인 식물을 그리는 작업을 다시 시도하고 싶다. 참고로 산토코노 화가는 많은 식물 가운데 특히 버섯 그리기를 좋아하였다.

부크레슈티 식물원의 정문.

5만4천평 크기의 식물원에는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한 지중해, 서부 호주, 남부 칠레,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 곳곳에서 가져 온 약 3천종의 각종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루마니아 자생종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1978년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온실을 포함한 3개의 온실 안에는 난(蘭), 야자나무, 선인장 등 열대와 아열대 식물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1886년에 만든 ‘침엽수 언덕(Conifers Hill)’에는 여러 종의 소나무와 쭉쭉 뻗은 가문비 나무들이 병풍처럼 서있다. 여러 종의 참나무를 포함한 아름드리 수목 이외에 전세계의 장미만 모아놓은 장미 정원도 있으나 필자가 방문한 시점이 겨울이었으므로 아쉽게도 만발한 장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필자는 이 식물원 방문을 통하여 전세계에 식물 종류가 39만종이고 이 가운데 10만종 이상이 아시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39만종 식물가운데 37만종이 꽃을 피우며 39만종 가운데 21%가 지구 환경문제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영국이 인도네시아를 네덜란드에서 탈취하였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영국 총독대리를 역임하고 오늘날 싱가폴을 만든 레플즈(Sir Stamford Raffles)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12년전에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 서남부에 위치한 벙꾸르(Bengkulu)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레플즈는 그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을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붙였다. 필자는 라플레시아(Rafflesia)라고 명명된 그 꽃을 벙꾸르에서 본 적이 있다. 벙꾸르에서는 이 꽃을 차체 옆에 그린 시내버스도 볼 수 있다. 여하튼 이 꽃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필자는 지구 반대편인 루마니아 식물원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는 품위 있는 정원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정원이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에 있던 정원을 이곳에 재현한 것이다. 이 정원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유럽 풍경화가들의 그림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탈리안 삼나무(측백나무과 Cupressus sempervirens)도 자태를 도도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운치 있는 연못을 따라서 일본 정원도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수목과 꽃이 심겨져 있는 것은 물론이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정원 두 곳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필자 혼자서 추측해 보았다.

식물원을 혼자서 둘러보다가, 식물원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이리저리 살피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왜 그렇게 유심히 이곳저곳을 살피느냐고 물어보니 이 현지인 젊은이는 유창한 영어로 자기는 영화감독인데 다음번에 이곳에 와서 촬영할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필자에게 여름이 되면 꼭 다시 와서 아름다운 식물원의 진면목을 봐 달라고 한다.

현지인 영화감독과 필자.

식물원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크게 아쉬운 것은 식물원 바로 옆에 들어 서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화력발전소이다. 말을 못할 뿐 식물원의 식물들은 죽을 지경일 것이다. 이 발전소는 물론 식물원이 설립된 이후에 들어선 것이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본 화력 발전소가 연상되어 생각난다. “사람이 먼저”라는 듣기 좋은 구호를 내건 공산주의, 사회주의 정권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자연스런 모습이다.

식물원 옆에 붙어있는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 나오고 있다.

식물원 입구에 들어가면 조그만 기념비가 있다. 이 식물원의 실제 창설자 디미트리 브란드자 교수의 기념비이다. 이 식물원은 물론 부크레슈티 대학 소속이지만 창설자를 기념하기 위해 1994년부터  식물원 정식 이름을 디미트리 브란드자 식물원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무한(武漢)에서 온 코로나가 끝나는 대로 여름철에 다시 가서 이 식물원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 정문 입구를 들어가 잠시 걸으면 오른쪽에 나타나는 장미 정원의 만발한 각양각색 장미꽃들이 필자를 반기는 모습이 벌써 눈앞에 보인다.    /나무신문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6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전북대학교 농업생명 과학대학 외래교수(4년),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8권. 현재 저술, 강연 및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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