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식물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식물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1.08.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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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83 - 권주혁 박사
식물원과 온실. 온실 안에는 열대와 아열대 식물 380여종이 있다.

유럽의 중남부(이탈리아 동북부)에 있는 슬로베니아는 티토 대통령의 사후(死後)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1991년에 독립한 국가로서 원래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다. 그러나 1809년 7월 5~6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인근 동북쪽의 바그람(Wagram) 평야에서 벌어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 사이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하자 주인이 바뀌었다. 즉 오늘날 슬로베니아가 있는 일리리안(Illyrian) 지방은 전투에 패배한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 양도하여 프랑스의 자치주가 되었다. 참고로 신약성경에는 일리리안 지명이 ‘일루리곤’으로 표기되어있다.

나폴레옹 통치시대에 일리리안 자치주의 수도였던 류블랴나(Ljubljana)는 오늘날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류블랴나는 한마디로 아름답고 깨끗하고 낭만이 가득한 도시로서 2016년에 유럽의 환경수도로서 선정되었을 정도로 청결하다. 도시 전체가 1895년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재건하여 오늘날처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 데는 건축가 플레츠니크가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도시의 많은 건물을 설계하였고 류블랴니차 강에 걸려있던 원래 다리(길이 약 40m) 양쪽에 새로운 다리를 1932년에 만들었는데 이 다리가 유명한 3중교(三重橋)로서 현지 주민은 Tromostovje라고 부른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인 이 다리는 오늘날 류블랴나의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이다. 이 다리를 건너 앞에 보이는 산위에는 15세기에 만든 류블랴나 성(城)이 산 정상 전체를 차지하고 웅장하게 서있다. 이 성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도 있으나 필자는 산기슭의 숲속을 걸어 올라갔다. 성벽 외곽을 따라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폭이 좁은 그루버(Gruber) 운하가 나오는데 이 운하를 건너 조금 더 가면 슬로베니아가 자랑하는 식물원의 정문이 나온다. 나폴레옹 통치시절인 1810년에 개원한 이 식물원은 작년에 개원 20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 식물원이 개원할 때 총독이었던 마몬(Auguste de Marmont)은 점령자로서 일리리안 자치주를 통치하였지만 자치주 주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으므로 오늘날에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국민 가운데에는 마몬 총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몬 총독이 식물원의 첫 원장으로서 임명한 흘라드닉(Flank Hladnik)은 본격적으로 식물원을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1814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오스트리아가 다시 일리리안을 회복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프랑스 점령시대에 프랑스 정부가 만들어 놓은 단체나 기관을 모두 없애버렸다. 식물원도 폐쇄될 위기에 처했으나 흘라드닉 식물원장이 평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비엔나 식물원의 호스트(Host) 원장의 도움을 얻어 식물원의 폐쇄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식물원은 약 6500평으로서 크지 않지만 4500여종의 수목과 화초가 식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1/3은 슬로베니아 고유종이고 나머지 2/3는 외국에서 온 도입종이다.

류블랴나 식물원 정문.

식물원 정문은 웅장하거나 거창하지 않아 들어갈 때부터 마음이 푸근해진다. 입구를 지나면 마치 시골의 숲길 같은 정경이 펼쳐지면서 수많은 수목과 꽃들이 방문객을 맞아 준다. 북아메리카에서 온 메타스퀘이어 거목을 비롯하여 수양 버들나무(Saliaceae Salix spp), 일본에서 온 느티나무, 은행나무도 보인다. 200년이 넘는 식물원 역사 때문에 1810년 식물원 개원시 심은 나무들도 아직 서있다. 유럽 원산의 전나무(Pinaceae Abies spp)들이 많이 보이는데 모두 대경목이고 높은 수고를 자랑하고 있다. 정문에서 멀리 떨어진 경사진 곳에는 일본 정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져온 여러 수목과 꽃들이 심겨져 있다. 특히 일본 정원에는 벚 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의 사꾸라(櫻) 위원회가  2000년에 기증한 것으로서 일본 왕실의 사야코(淸子)공주가 직접 와서 심은 것이다. 하여간에 외국의 유명한 식물원을 방문할 때 마다 일본 정원이 많고 일본을 대표하는 수목과 꽃이 많이 식재된 것을 보면서 그렇치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되어 아쉬움과 부러움이 생긴다.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우리나라의 나무와 꽃을 외국 식물원에 식재하여 그 나라 국민에게 소개하려는 일말의 생각도 없는 것 같다. 하긴 정치인이나 공무원이기에 앞서 이들도 모두 우리 국민 가운데서 선출된 사람들이다.

호도나무과의 수목(Pterocarya fraxinifolia)과 필자.

식물원에 있는 수목원 속을 걷다가 우연히 숲속에 작고 아담한 집과 그 앞마당에 놓여진 흰색의 깔끔한 테이블들과 의자들이 보인다. 식물원의 카페이다. 많은 나무들 한 가운데 이렇게 운치있는 카페를 본 것은 필자에게는 처음 보는 경험이다. 필자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서 한여름 더위도 식힐 겸 시원한 과일 쥬스 한 잔을 시켰다. 종업원들은 여자 대학생들로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는데 필자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TV에서 K-Pop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1919년에 설립된 류블랴나 대학은 그 다음해인 1920년에 이 식물원의 관리를 맡은 이후 오늘까지 이 식물원은 류블랴나 대학에 속해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식물원이 기초 자연연구 기관으로서 대학에 속해 있으므로 류블랴나 식물원도 예외가 아니다. 작고 아름다운 류블랴나 도시처럼 이 아담한 식물원은 언젠가 중국 우한(武漢)에서 온 코로나가 끝나서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꼭 다시 찾아가고 싶은 식물원 가운데 한 곳이다.  /나무신문

 

권주혁 박사
권주혁 박사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6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전북대학교 농업생명 과학대학 외래교수(4년),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8권. 현재 저술, 강연 및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