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 손보지 않으면 MDF · PB 산업은 망하게 될 것”
“REC 손보지 않으면 MDF · PB 산업은 망하게 될 것”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2.1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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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조사들 원재료 없어서 ‘동동’
발전에너지업계 가중치 받고 ‘떵떵’

“평생을 두메산골에서 홀어머니 모시고 살았는데, 비탈밭 부동산 가격이 조금 오르자 도회지에 나가 살면서 명절에도 찾아올까 말까하던 큰형이 처음 보는 형수와 함께 찾아와서는 ‘어머님 밥상이 부실하다’고 타박하는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청운의 꿈을 안고 목재회사에 입사해 몇 년 후면 환갑을 바라보는 한 목질보드류 생산업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그런데 문제는 홀어머니마저 큰형의 고운손길을 더 따듯해 하고 있다는 데서 이 목재인의 비애는 깊어만 간다. 

그가 말하는 홀어머니는 산림청, 큰형은 목조주택 등 목자재 업계, 처음 보는 형수는 목재를 태워 전기나 열을 생산하는 에너지업계다. 

국내 목질보드류 업계가 원재료 부족으로 가동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종의 보조금인 REC 가중치를 받고 있는 에너지 업계와의 원재료 확보전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진은 남성현 산림청장 페이스북 캡처.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목은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산불피해목의 상당부분도 에너지업계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현재 MDF(중밀도섬유판) 및 PB(파티클보드) 등 우리나라 목질 보드류 생산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열흘 이상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일도 발생되고 있다. 하루 휴동에 고정비만 1억원 가까이 손실이 발생한다는데, 이유는 원재료가 없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11월 초 기준 A업체의 원재료 비축량은 5000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약 3일치 재고인데, 보통 보름에서 한달치 재고를 가지고 가야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또 다른 업체의 원재료 재고는 1만5000톤, 일주일치 물량이다.

이처럼 ‘어머니에게 부실한 밥상을 차려주면서 헐값에 우리나라 나무를 독차지 하다시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목질보드류 업체들이 어째서 원재료가 없어서 배를 곯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REC(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가중치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REC 가중치 때문에 에너지업계의 목재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제도가 처음 도입되던 때에는 ‘미이용 임산물’ 즉 목재업계에서 사용하지 않는 나무에만 REC 가중치를 적용하겠다던 것이, 지금은 나무뿌리를 제외하고 거의 전 품목에 가중치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

원목의 상태나 발전 시 목재만 전소하는지 다른 것과 혼합해 혼소하는지에 따라서 1.0~2.0%까지 가중치가 주어지고 있다. 1REC의 가격은 6만5000원 정도로 계산되고 있는데, 가중치 2인 경우에는 13만원의 보조금이 주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발전업계는 목재업계보다 13만원을 더 주고 원재료를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똑같은 목재를 사용해 목재제품을 만드는 보드류 생산업체는 REC 가중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MDF 생산업계에서 지불하고 있는 원재료 구입비용은 얼마일까. 수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로 사용하는 소나무 기준으로 톤당 9만2000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작년 대비 30% 가깝게 올라간 가격이 이 정도다. 사실상 REC 가중치 지원을 받는 에너지업계를 당해낼 수 없는 구조다. 최근 몇 년 간 늘어난 에너지업계 수요 규모를 살펴보면, 이 힘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목재산업계에 따르면 REC 가중치가 도입되기 시작한 2017년에서 18년에는 같은 목질 원재료를 가지고 경쟁할 에너지업계는 에스와이에너지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뒤 에스와이에너지 2공장이 생기고, 21년부터 신영포르투도 가동을 시작했다. 이 두 개 사만 해도 연간 115만 톤의 원자재를 사용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여기에 연간 30만 톤 규모의 에코에너지원도 비슷한 시기 가동을 시작했다. 모두 합치면 145만톤이다. 전국에서 목재펠릿을 만들어 발전소에 납품하는 업체들의 수요는 더하지도 않은 수치다.

우리나라 MDF 생산업계에서 사용되는 원목양이 180만㎥인 점을 감안하면, 가히 삽시간에 에너지업계가 그 수요를 따라잡은 셈이다. 벌목 직후 원목 1㎥는 보통 1톤으로 계산된다. 보드류와 펄프를 합치면 250만㎥의 국산원목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원목 생산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작년 기준 460만㎥가 생산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이는 공급이 활발하던 때 570만㎥에 비하면 100만㎥ 이상 줄어든 셈이다.

산업계에서는 ‘미이용 목재’ 이용 활성화라는 취지에 맞게 REC 가중치 제도를 새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중치 적용을 실질적으로 기존 목재산업계에서 사용하지 않는 ‘미이용 목재’에만 적용하던지, 목재업계에도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전 지구적 화두로 떠오른 탄소중립 관점에서도 나무를 베자마자 불태워서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해버리는 에너지원 사용보다는, MDF 등 물질사용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목재는 순환이용이 강조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목재의 탄소저장 능력을 이야기 할 때 제재목은 45년, 보드류 25년, 종이는 2년으로 계산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로 사용하면 그게 0이 되는 것”이라며 “특히 목재를 제재목이나 MDF, PB 등으로 몇 번 순환해서 충분히 이용한 다음에도 에너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산림청이 목재업계와 에너지업계가 모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벌채량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면, 목재는 물질이용에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각에서 주장하기를 수입 목재펠릿을 국산나무로 대체할 경우 600억 정도의 수입대체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같은 계산법으로 이 나무를 펠릿 생산이 아닌 PB 생산에 투입했을 때는 3000억의 수입대체 효과가 있다”면서 “목재는 제재목, 합판, 보드류 등 물질로 우선 이용하는 것이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좋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청춘을 다 바치고 환갑을 바라본다는 목재인은 “갑자기 나타난 형과 형수가 어머니 밥상에 올려놓은 꽁치 한 토막은, 평생 모시지도 않던 어머니를 서류상 피부양자로 올려놓고 받은 돈으로 산 것과 같다. 목조주택 산업에서 도대체 국산목재를 1%나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면서 “제재목 사용도 좋고 신재생에너지도 다 좋다. 하지만 평생을 비탈밭 지키면서 살아온 기존 산업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REC 가중치를 손보지 않으면 MDF와 PB 산업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