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품은 바닷길
역사를 품은 바닷길
  • 나무신문
  • 승인 2015.12.0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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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제주올레 19코스 중 조천만세동산~서우봉
▲ 관곶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제주올레19코스는 제주공항 동쪽에 있는 조천읍 조천리 조천만세동산에서 출발하여 서우봉을 지나 구좌읍 김녕서포구(어민복지회관, 해녀마을쉼터 부근)까지 이어지는 18.6km 코스다. 이중 전반부인 조천만세동산부터 서우봉까지 걷는 길을 먼저 소개한다. 

▲ 조천만세동산. 3.1독립운동기념탑

항일독립투쟁의 역사가 빛나는 조천만세동산 
제주공항에서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동회선일주버스 701번 버스로 갈아타고 조천체육관정류소에서 하차한다. 길 건너편 왼쪽으로 약 80m 거리에 조천만세동산이 있다. 그곳 주차장 안에 제주올레19코스 출발지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조천만세동산은 제주 항일독립투쟁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1919년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18년 10월에 법정사스님을 중심으로 선도교도와 지역주민 등 400여 명이 중문 주재소를 습격하고 불을 질러 전부 태워버리며 항일독립의 의지를 널리 알린 ‘법정사항일운동’의 내용을 알 수 있다. 

1919년 3월21일부터 3월24일까지 조천 미밋동산(만세동산)과 조천장터에서 일어난 항일만세운동을 기념하는 기념탑도 보인다. 

▲ 조천만세동산. 우뚝 솟은 탑이 애국선열추모탑이다.

1931년~1932년 구좌, 성산, 우도 등의 해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해녀항일운동은 일제와 해녀조합의 식민지 약탈 정책에 항거하는 제주해녀들의 항일운동이었다. 2년 동안 238회에 걸쳐 17000여 명이 항일운동에 참가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천만세동산에서 일제강점기 민초들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끼고 길을 출발한다. 바다 쪽으로 가는 길에 갈대가 무성하다. 그 길을 걷다보면 바다를 만난다. 

아스팔트로 포장한 도로지만 제주의 바다 옆에 있으니 낭만적이다.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바다를 보며 걷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관곶이다. 

▲ 조천 만세동산에서 관곶으로 가는 길.

바다와 길과 갈대가 만든 풍경
관곶은 조천읍 신흥리 바닷가에서 북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곳이다. 제주에서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알려졌다. 

조천관이 있었던 옛날에는 북쪽으로 길게 뻗은 지형 때문에 각종 선박이 항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관곶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을 지나 조천포구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제주목사나 선비들, 유배자, 상인, 일반인 등이 조천포구와 관곶 등을 지나는 항로로 항해를 했다. 조천포구는 제주의 관문 역할을 했으며 상거래도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 신흥리 바다

관곶 바닷가 정자에 올라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바다가 구불거리는 길 아래서 부서진다. 길은 바다와 땅 사이에서 방파제 역할도 한다. 길 옆 땅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피어났다. 갈대밭 뒤로 먹구름이 낮게 떠서 바다와 길과 갈대밭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배경이 된다. 

풍경을 가슴에 담고 돌아서서 걷는 길 앞에 푸른 물빛의 바다가 마을로 깊숙이 들어온 또 다른 풍경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세찬 바람은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고 포말을 길 안쪽까지 날린다. 

바다를 등지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그 나름의 운치가 있다. 세월의 더께 앉은 담벼락과 어수룩하게 쌓은 현무암 돌담길을 걷는다. 

▲ 함덕해변.
▲ 함덕마을길.

함덕, 그리고 서우봉

함덕마을 골목을 지나면 햇볕 반짝이는 바다가 나온다. 바다를 바라보는 눈을 햇볕이 쏘아댄다. 그 햇볕은 바다에도 그렇게 떨어져 함덕의 바다 전체가 반짝거린다. 함덕의 바다가 반사하는 햇볕이 날카롭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바다가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색을 버린 바다는 단순해서 강렬하다. 

바닷가 길은 푸르른 바다를 백사장으로 밀고오는 함덕서우봉해변으로 이어진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파도가 높다. 옥빛 바다가 해변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 함덕서우봉해변

서우봉으로 올라간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다는 낮아진다. 깊어진다. 그곳 어디쯤에서 비석 하나를 보았다. 

▲ 함덕마을길. 함덕해변으로 가기 전 마을

비석에 따르면 이곳이 삼별초와 여원연합군이 싸웠던 바다다. 삼별초가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고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 고려는 원나라와 손잡고 연합군을 만들어 이곳 함덕포구로 쳐들어온 것이다. 이곳에서 삼별초군은 여원연합군에게 섬멸당했다고 전해진다. 

제주올레19코스는 서우봉 꼭대기로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산허리로 접어든다. 하늘을 가린 숲길은 짧다. 짧은 숲길을 지나면 하늘이 열린다. 하늘이 열린 길을 걷다보면 북촌마을로 내려가는 바닷가길이 나온다. 바다는 눈부시지만 북촌마을은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 서우봉에서 북촌마을로 가는 길목.
▲ 서우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돌아본 풍경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