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걷는 길
바람이 걷는 길
  • 나무신문
  • 승인 2016.03.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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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울산시 울주군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 1코스 억새바람길
▲ 간월재에서 신불산으로 가다가 돌아본 풍경.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울산시 울주군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 1코스 억새바람길은 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으로 이어지는 4.7㎞ 코스다. 

하지만 출발지점인 간월재휴게소까지 올라가는 길과 도착지점인 영축산에서 하산하는 길이 있으니 그것까지 더하면 전체적으로 17~18㎞ 정도 걷는다. 

간월재휴게소로 올라가는 길은 크게 세 코스인데 하나는 배내고개(배내터널)에서 배내봉과 간월산을 지나 간월재휴게소에 도착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배내고개(배내터널)를 지나 사슴목장 입간판 있는 곳에서 올라가는 임도인 사슴목장코스다. 세번째는 간월산장에서 올라가는 길이다. 

배내터널을 지나서 조금 더 내려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사슴목장’이라는 입간판이 있는데 그 입간판 맞은편으로 도로를 건너면 나오는 ‘사슴목장코스’ 5.9㎞ 구간을 선택했다. 하산길은 영축산 정상에서 하북지내마을로 내려오는 5.65㎞ 코스를 선택했다. 

하북지내마을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통도사신평버스터미널에서 언양, 양산, 부산, 울산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 간월재로 올라가는 임도길.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속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걸어나오고 있다.

안개 속으로
어둠이 내린 언양 시외버스터미널에 비가 내린다. 겨울을 끝내는 겨울비인가? 봄이 시작되는 봄비인가? 계절이 바뀌는 땅으로 빗방울이 총알처럼 박힌다. 땅에 박히고 파편처럼 튕기며 대지에 숨구멍을 틔운다. 

대지의 호흡에서 비에 젖은 흙냄새가 난다. 숙소를 잡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비 걱정 끝에 맑게 갠 내일의 하늘을 생각하며 잠이 든다. 

이른 아침 먹구름이 잔뜩 들어찬 하늘을 보며 배내터널을 지나 사슴목장 입간판 앞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임도를 따라 5.9km를 걸으면 간월재휴게소가 나온다. 

완만한 경사와 평지가 번갈아서 나오는 넓은 임도는 걷기 편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의 밀도도 높아진다. 안개는 10여 미터 앞에서 길을 끊는다. 길 밖 풍경도 그렇게 사라지고 없다. 

안개는 산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바람조차 한 점도 불지 않는다. 나무도 희미한 그림자만 남았다. 

희미한 나무 그림자 아래로 움직이는 형체가 보인다. 안개 속에서 걸어나오는 그들은 간월재휴게소에서 비 오는 밤을 보낸 사람들일 것이다. 자기 몸집만한 배낭을 멘 그들은 산을 닮았다. 산 같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안개는 간월재휴게소까지 집어삼켰다. 휴게소 안에는 두 명의 남자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1시가 넘어도 안개는 그대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언양에서 사온 김밥에 휴게소에서 파는 컵라면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따듯한 컵라면 국물을 들이키는데 바람이 분다. 

능선을 넘는 바람이 안개를 끌고 멀리 사라진다. 역동적인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햇볕 기둥이 땅으로 내려온다. 지금 바로 출발이다.     

▲ 간월재. 신불산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보인다.

하늘금을 걷다
원래는 간월재휴게소에서 신불산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데 반대 방향인 간월산 쪽으로 올라갔다. 규화목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규화목이 있는 곳까지 올라간다. 화석이 된 나무의 흔적 앞에 서서 사방을 돌아본다. 바람이 쉬지 않고 분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 해발 900m에 있는 간월재에 햇볕이 아늑하게 고인다. 

다시 간월재로 내려가서 신불산 방향으로 걷는다. 나뭇가지에 안개의 물방울이 얼어붙어 ‘얼음꽃’이 피었다. ‘얼음꽃’이 생기는 높이에 난 길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영하의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든다. 

▲ 안개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서 생긴 얼음꽃.

신불산 정상 500m 전에 전망대가 있다. 앞으로 가야할 신불산과 영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길이 났다. 그 길을 따라 신불산 정상에 도착했다. 1159m, 정상 표지석을 지나 영축산 방향으로 걷는다.

신불재를 지나서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그 앞에 펼쳐진 신불평원에 지난 가을 억새의 흔적이 가득하다. 제철이 아닌 풍경조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황량한 풍경이 오히려 따듯하다.  

▲ 영축산 정상.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영축산으로 가는 길이 질다. 발을 잘못 디디면 신발이 진흙에 빠진다. 돌을 밟아도 돌이 흙 속으로 내려간다. 흙을 움켜쥔 억새의 뿌리를 밟고 걷는다.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걸음에 마음만 급하다. 

그렇게 도착한 영축산(1081m) 정상에 앉아 땀을 식힌다.  

오후의 햇살 퍼지는 취서산장을 지나
영축산 정상에서 하북지내마을 방향으로 하산한다. 비탈진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긴장한 발걸음이 취서산장을 만나면서 느긋해진다. 

취서산장 마당 위에서 산악회 리본이 줄에 매달려 펄럭거린다.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전망을 즐긴다. 이런 곳에서는 막걸리 한 잔도 좋고 시원한 물 한 모금도 좋겠다. 오후의 햇살 퍼지는 산장 마당에 앉아 풍경이 주는 평온함을 즐긴다. 

▲ 영축산 정상에서 하북지내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취서산장이 나온다. 산장 마당에서 본 풍경.

영축산 정상에서 산장까지 0.85㎞ 정도 산길이고 산장부터 지내마을까지는 임도를 따라 4.8㎞ 정도 걸으면 된다. 

넓은 흙길은 걷기 편하다. 하늘을 가린 나무와 흙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마음도 편하게 해준다. 

▲ 취서산장에서 하북지내마을까지 임도길을 따라 걷는다.

구불거리는 임도를 관통하며 내려가는 오솔길도 있지만 비탈진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하산 시간은 그렇게 많이 차이나지 않는다. 

임도가 끝나면서 지내마을 마을길이 시작된다. 마을길을 걷다가 뒤돌아 본 눈길에 영축산 정상이 박힌다. 우뚝 솟은 정상에서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그 산자락에 통도사가 있지만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있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내마을회관 앞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통도사신평터미널로 갈 수 있지만 버스가 방금 전에 떠났다. 다음 버스는 1시간 뒤에 있으니 걷는 게 낫겠다 싶었다. 15분 정도 걸어서 통도사신평터미널에 도착했다. 울산행 버스는 친구가 사는 마을로 나를 데려다주고 있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