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과 도전이라는 ‘작두타기’
불가능과 도전이라는 ‘작두타기’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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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신문 평생회원 기업인④-신대림제재소 이명옥 대표

 

힘에 부치는 일 앞에, 해결이 어려운 일 앞에 선뜻 ‘Yes!’를 외치기란, 거절할 만한 숫기가 없거나 든든하게 믿는 구석이 있을 때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해당 사항 없으면서도 부단히 긍정의 외침을 멈추지 않는 이가 있다. 한옥 전문 제재소, ‘제재소를 위한 제재소’ 신대림 제재소의 이명옥 대표가 그 주인공. 불가능이란 단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어떤 의뢰가 들어와도 기어이 그 해결방법을 찾고야 마는 그는, 이미 한옥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시간의 견고함이 함축된 한옥처럼 우직하게, 단단하게 한 길을 걷고 있는 이명옥 대표의 목재, 그리고 한옥 이야기.

 

# 질긴 긍정의 뿌리가 내린 곳,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다.
‘한옥 자재의 명가’란 수식어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신대림제재소는 5m급 배흘림기둥 생산이 가능한 자동성형기를 도입했고, 5각 6각 8각 16각 18각 기둥은 물론 아치가공 또한 12m까지 기계화에 성공했기 때문. 또한 경주한옥호텔 ‘라궁’에 한옥자재 40만재 이상을 납품했으며, TV사극 <대조영>과 <연개소문> 세트장에도 고재 수 십 만재를 들인 바 있다.

이 모든 성과는 ‘무조건 된다’는 신념으로 그 어떤 주문에도 “Yes!”를 외친 신대림제재소 이명옥 대표의 초긍정 마인드와 두둑한 배짱, 그리고 주인정신으로 무장한 직원들과의 협업 덕분이다.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더라도 없는 기술은 만들어 내고, 있는 기술은 보강해 새로운 기술로 재탄생시키는 그들의 저력은, 10 여 년이 지난 지금 한옥 목재 제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설비 규모를 확충하고 치목장 등을 설립해 한옥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있는 신대림 제재소는, 지금도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회사 설립 배경이 평범하지 않다고 들었다.
구 주식회사 대림제재소가 지금 회사의 전신이다. 지난 2002년에 IMF 영향으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 2년 동안 공동지주로서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꾸렸다. 이후 오류동으로 이사했고 직원들의 추천으로 대표직을 맡아 5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건 지난해 4월이다.

 

우여곡절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난관들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
지난 시간은 한마디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었다. 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 있는 것이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주변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나와 동료들 또한 책임감을 가지고 합심했으니 하는 말이다. 공장을 접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을 때에도 서로를 다독이며 위기를 넘겼다. 난 여전히 ‘오너’ 보다는 ‘직원’의 마음으로 일한다. 정해진 월급만 가져갈 뿐 나머지는 전부 재투자 한다. 더 많이 벌어서 직원들에게 더 많이 주고 싶은 소박한 욕심(?) 때문이다.

 

#과거를 먹고 미래를 꿈꾸는 곳, 한옥 전문 제재소로 거듭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저한 차별화가 필요할 즈음 팩스로 낯선 도면 하나가 들어왔다. 전주에 있는 한옥 납골당으로 견적을 문의하는데, 도무지 생소해서 세부 견적을 낼 수가 없었다. 주변 제재소에 물어봐도 대강 ‘얼마’ 하는 식의 주먹구구식 대답뿐이었다. 한옥과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이 대표는 한옥문화원에 대해 알게 됐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옥 짓기 전문인 과정을 수강했다.

수업을 듣다 보니 목수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그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차츰 한옥 전문용어도 알아듣게 되고 대화도 수월해졌다. 어느 날 우연히 ‘대패도 해주고 가공도 해주는 제재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이 대표. 단순한 제재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 신대림제재소만의 특화된 상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옥의 매력은 무엇인가.
한옥은 건축의 최고 경지라 생각한다. 자연적인 목재의 특성과 전통 문화를 그대로 살리기 때문이다. 일전에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 한옥 수리 현장에서 고재 기둥을 하나 얻어 온 적이 있다. 그 고재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 나무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보다 연륜 있고 해묵은 것들이 더 매력적이고 끌린다. 그 이면에 숨은 스토리와 역사, 문화까지 듬뿍 담겨 있으니까. 한옥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한옥에 대한 남다른 고집과 애정으로 최근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고 들었다.
올 4월에 한국목재공학회에서 주는 ‘CNC 한옥 가공기계’로 ‘기술상’을 받았다. 한국목재공학회는 일종의 학회로 관련학과 교수진과 산림과학원 연구원들이 대부분이다. 산업계 쪽에서 기술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또 그 이전에 나무신문 제재 및 한옥 전문기자로도 위촉 받기도 했다.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명예롭게 생각한다. 제재 분야는 학교에서도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편이라 산림과학원 명예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인데, 세미나를 할 때면 제재 파트를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흡수하고 기계도 개발했다고 들었다.
한옥 관련 제재를 전문적으로 하다 보니 그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이 필요했고, 자체적인 기술개발이 기계 개발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2개는 특허를 받은 상태고 3개는 신청 중이다. 특허 받은 기계로는 나무의 중심에 심홀 가공을 하는 ‘홀가공기’와 컴퓨터로 수치를 제어해서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하는 ‘골가공기’가 있다. 현재는 브러싱 기계 개발을 마치고 설치 준비 중에 있다. 낙송 합판을 브러싱하는 기계인데, 가장 고재와 가까운 느낌이 들도록 가공하는 것이다.

 

다른 회사의 가공 고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타사의 가공 고재는 주로 인테리어용 판상제품이지만, 이곳에서 생산하는 고재는 문화재, 고택, 사찰 등의 보수에 쓰이는 각재(기둥)다. 5,6,8,16각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에 목수들이 수작업을 통해 만들던 것을 기계화시켰다. 목재 또한 미송이나 육송을 사용하는 데다, 품질 저하를 우려해 목재를 완벽하게 건조시킬 수 있는 인공건조시설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품질은 자신한다.

 

새로운 고재 가공법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라던데.
어느 날 방무목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히 놔두면 나무도 유기물이므로 자연스럽게 벌레를 먹을 것이고, 자연 상태로 두면 부패하는 데 5년 정도 걸릴텐데, 만약 며칠에서 몇 달 만에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켜 부패시킬 수 있는 미생물을 개발하면 어떨까 하는. 그렇다면 굳이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아도 자연스런 느낌으로 부패된 고재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생각이 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인 지라 현재 학계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자문을 구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사세를 크게 확장시키거나 목표 매출을 정해놓고 돈을 좇을 욕심은 없다. 다만 난 아직 젊기에 두려움 없이 여러 가지 도전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단, 목재 분야를 활성화시킬 수 있고, 목재인들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안에 한해서다. 몇십년씩 한 길을 걸어온 이들이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 하는 현실은 몹시 안타깝다. 기계화 자동화 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기술이 전문성을 인정받고 처우가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윤원 객원기자 imwood@imwoo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