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이상한 바위 절벽
제주의 이상한 바위 절벽
  • 나무신문
  • 승인 201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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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용머리해안

▲ 기괴한 절벽 갯바위 위에는 어김 없이 해산물과 술을 파는 아줌마들이 곳곳에 있다. 제주도는 눈길 가는 곳 마다 마음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사계절 날마다 다르게 보이는 제주의 아름다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제주는 2박3일, 일주일,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른다. 제주 여행의 새로운 형태는 ‘제주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돼야 한다. 제주도 관록의 여행지 중 한 곳이 <용머리 해안>이다. 제주 남서부에 있는 이곳은 외계인 부족이 살 것 같은 분위기의 바위 절벽이 바닷가에 약 600m 정도 이어진다. 이소룡을 이어 중국 영화의 대를 이은 성룡의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180만 년 전 바다 속에서 용암이 폭발해서 생긴 <용머리 해안>은 오랜 세월 퇴적된 사암층과 또 그 세월 만큼 깎이고 파인 침식작용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은 그 모습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장차 큰 왕이 태어날 지세라는 이야기가 중국의 진시황에게까지 전해졌다. 진시황은 사람을 보내 이곳의 혈을 끊게 했다. 혈맥을 찾아 용의 꼬리와 등 부분을 끊자 그곳에서 피가 솟구쳤다고 전한다. 혈맥을 끊은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모두 죽었다고 한다. ▲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외계인 부족이 살 것만 같은 풍경이 용머리해안 절벽을 이루고 있다.
바위절벽 아래 바닷가 갯바위를 따라 걷다보면 풍경에 압도 된다. 이런 곳에 1653년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표류했다. 파란 눈의 이방인 또한 기괴한 형태의 <용머리 해안> 풍경을 처음 보고 놀랐을 것이다.


▲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1653년 제주도 용머리해안에 표류했다. 흰 옷에 갓을 쓴 사람들을 보고 하멜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멜과 그 일행은 조선군에 체포되어 제주도, 한양, 전남 강진 등으로 옮겨 다니며 감옥생활을 했고, 사형의 위기까지 몰린 적도 있다. 다행히 죽음을 면한 하멜과 그 일행은 갖은 노동을 해야 했다. 당시 한양에 있던 네덜란드인 ‘박연’이 통역을 맡은 효종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하멜은 고국으로 가기를 요청했는데 효종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옥살이와 노역에 시달리던 하멜과 일행 중 일부는 1666년(현종7년)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타고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하멜은 그동안 조선에서 일한 댓가를 임금으로 받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게 바로 <<하멜 표류기>>로 알려진 <<하멜 보고서>>였다. 그 기록에는 조선의 풍속과 정치 경제 지리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 멍게 해삼 전복 등 갖은 해산물 한 접시에 소주를 곁들였다. 술과 안주도 좋지만 절벽 갯바위에 앉아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친구와 함께 하는 것 자체로 가슴이 그득하다.

<용머리 해안>에 얽힌 전설과 역사 이야기를 알고 난 뒤 걷는 길은 느낌이 다르다. 그렇게 600m의 갯바위길을 걷는 길 곳곳에 해산물을 파는 아줌마들이 곳곳에 앉아 있다.


멍게 해삼 전복 등 갖은 해산물 한 접시에 소주를 곁들였다. 술과 안주도 좋지만 절벽 갯바위에 앉아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친구와 함께 하는 것 자체로 가슴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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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