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현재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다. 백제의 성왕은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겼고 그 비슷한 시기에 정림사도 생겼다. 천도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발판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천도에 따른 견제세력의 입김을 잠재우고 백성들의 걱정을 없애며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에 적절한 것이 종교였으며, 불교가
널리 퍼진 백제에서 큰 절을 세우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의 사상적 구심으로 충분했다. 익산의 미륵사 또한 그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여겨졌다.
익산 금마면 미륵사지에서 동쪽으로 5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왕궁면 왕궁리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 이름이 왕궁리였다는 것이다.
이곳이 어느 시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이었는지에 대한 설은 분분하지만, 그 가운데 백제의 왕궁터라는 이야기도 있다.
-----------------------------------------------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