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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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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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부소산성

▲ 고란사 바로 아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구드래나루터로 가는 뱃길에서 바라본 낙화암 절벽. 해발 106m의 부소산은 산을 둘러싼 부소산성이 있어 유명하다. 백제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부소산성으로 들어간다. 부소선성은 백제 성왕 때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성왕 이전에 이미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성왕이 천도를 하면서 성을 강화 했다고 전한다. 부소산성에는 삼충사, 군창터, 백제의 건물터, 영일루, 사비루, 반월루, 고란사, 낙화암 등이 있다. 부소산성에서 처음 만난 건 삼충사다. 삼충사는 의자왕 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 투옥되어 죽은 성충과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탄현을 지켜야 한다며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흥수, 김유신의 5만 군대에 맞서 5천의 결사대로 싸우다 황산벌에서 죽은 계백 장군 등 세 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이다. ▲ 백마강 유람선.

 


▲ 낙화암 절벽 아래에 있는 고란사. 고란사 절집 뒤에 있는 거북 바위다. 거북 바위 옆에는 젊어지는 샘물의 전설이 내려오는 약수터가 있다. 충렬사를 지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길을 따라 올라간다. 포장된 도로이기는 하지만 주변에 숲이 있어 팍팍하지만은 않다. 영일루를 돌아보고 전망이 좋은 반월루로 향한다. 반월루는 부여읍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오르면 저 멀리 궁남지도 보이고 읍내에 있는 정림사지도 볼 수 있다. 발걸음은 부소산성길의 핵심 포인트인 낙화암으로 향한다. 그 옛날 나당연합군이 침입하였을 때 백제 사람들이 강으로 뛰어 내려 죽은 곳이다. 이른바 ‘삼천궁녀’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삼천 명의 궁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낙화암 부근의 절벽에서 뛰어 내려 죽음으로 백제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사료는 증언하고 있다. ▲ 낙화암 절벽 위에 세워진 백화정에서 바라본 백마강 줄기.
▲ 낙화암 절벽 위에 세워진 백화정. 낙화암 절벽 위에 세워진 백화정은 그 자체로 바위에 피어난 꽃 같다. 낙화암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고란사가 나온다. 이번 걷기여행의 종착지점이다. 절 풍경소리에 미련을 두고 고란사 나루터에서 배를 탔다.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물길이 운치가 있지만, 직접 배를 타고 물길 따라 구비 도는 부소산 자락을 올려보는 멋도 색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구드래 나루터에 도착하고 있었다. ▲ 반월루. 반월루에 올라서면 부여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구드래 나루터는 백제 사비성(부여)의 관문 역할을 했던 포구였다. ‘구드래’라는 이름을 오늘 날 말로 바꾸자면 ‘큰 나라(大王國)’에 가장 가깝다. 구드래 나루터는 ‘큰 나라’의 수도로 들어가는 해상관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큰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 반월루에 올라 바라본 부여 읍내. 저 멀리 궁남지의 수양버들숲이 보인다. 중간에 있는 큰 기와지붕 있는 곳이 정림사지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 백마강 절벽 기슭에 자리잡은 고란사.
   
▲ 부소산성 산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