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고 쓸리며 정착한 옛 것들의 새 터
밀리고 쓸리며 정착한 옛 것들의 새 터
  • 장태동
  • 승인 201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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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설동 풍물시장

▲ 턴테이블 위에서 레코드판이 돈다.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 나온다. 클래식 음악이 풍물시장에 울려퍼진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황학동에서 곱창을 먹고 황학동 시장과 골동품 거리를 구경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찾아간 그곳은 썰렁했다. 남아 있는 가게들도 있었지만 분위기는 예전의 그 분위기가 아니었다. 동대문야구장으로 풍물시장을 옮긴 때였다. ▲ 가죽으로 여러가지를 들어 판다.
그 다음부터 옛 물건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향기가 그리울 때는 동대문야구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랜 만에 찾아간 동대문야구장 풍물시장은 없어졌다. 알아보니 신설동으로 자리를 또 옮겼다는 것이다.


청계천 사람들이 성남 구릉으로 실려 간 청계천 개발의 그림자가 아직도 청계천 사람들에게 드리워 있는 듯 싶다.
도시 개발에 이리 밀리고 저리 쓸리는 사람들이 정착한 신설동 풍물시장을 찾았다.


신설동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길바닥에 ‘U턴 해서 260m' 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찾기는 쉽다.
풍물시장은 옛날처럼 골목을 이룬 게 아니고 건물 안 1, 2층에 점포 형식으로 돼있다. 주말에는 밖에서도 장이 열린다고 한다.


▲ 풍물시장 건물 밖에 내놓은 물건들. 화로에 불을 때 주전자에 물을 데우는 물건이 눈에 띤다. 60년대 전남 강진에서 돌던 맷돌이 80년대 서울 혜화동 어느 집 마당에서 뒹굴다가 풍물시장 민속품 시장에 놓여 있다. 인도나 네팔 어디 쯤에서 오가는 여행자의 속을 따듯하게 덥혀 주던 차를 끓이던 화로가 풍물시장 야외장터에서 관록을 자랑하고 있다. 단 칸 자취방 새벽불 밝히며 공부하던 고학생의 딕셔너리가 잡동사니에 섞여 나뒹굴고, 누군가의 외로운 밤을 달래 주던 턴테이블은 아직도 돌아가며 고혹한 소리를 낸다. 크고 작은 물건, 비싸거나 싼 물건 가릴 것 없이 그 어느 것 하나를 지목한다 하더라도 그것에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주인의 삶이 묻어 있다. 시간과 공간을 씨줄 날줄로 가르고 나눈 모눈종이 같은 촘촘한 삶들이 신설동 풍물시장에 모여 지금 오늘도 세월의 천을 짜고 있다. ▲ 신설동역 10번 출구로 나오면 길바닥에 풍물시장 가는 이정표가 있다.
풍물시장 안에 식당촌도 있다. 1층과 2층에 각각 식당이 모여 있다.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지만 이곳에서는 장터 분위기 물씬 풍기는 칼국수, 소머리국밥, 선지국밥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칼국수를 시켰다. 맛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홍합과 바지락 새우 등이 맛을 돋운다. 국물도 시원했고 면도 쫄깃했다. 맛이 평균은 넘는다. 4000원에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막걸리를 한 모금 했다.


나오는 길, 시장 건물 밖에 부처님이 만국기 아래 앉아 계셨다. ‘반가사유상’을 닮은 부처님동상은 눈을 감고 있었다. 오후 4시에 마수걸이를 했다는 풍물시장 가게 사장님의 쉰웃음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 풍물시장 건물 안 1층과 2층에 식당이 있다. 1층 식당촌에서 시킨 해물칼국수. ------------------------------------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