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전시동물의 슬픔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전시동물의 슬픔
  • 나무신문
  • 승인 201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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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서울대공원에 가서 보았다. 코뿔이 잘린 코뿔소 처량하게 누워 있는 것을. 수심 가득한 눈에는 오로지 피로와 공포뿐.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어요. 차라리 나를 박제로 만들어줘요. 나는 너무나 지쳤어요. 당신은 나를 보고 웃지만, 당신이 웃는 동안에도 나는 죽어가요. 그는 야생의 초원을 늠름하게 뛰어가던 무소로서의 자존심도 잃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던 기개도 없어졌다. 그는 볼품없고 늙은 전시동물. 그의 용맹한 자부심은 사람들의 눈에 닳고 닳아서 한없이 누추해졌다. 사람들은 뿔이 달리거나 목이 긴 신기한 동물들을 가둬놓고 전시한다. 그러면서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먹고 마신다. 구경꾼들은 그들과의 안전한 거리에서 쾌감을 느끼지만 그 사이 자연이 기른 용맹이 아무도 몰래 죽어가고 있다. 저 순수한 야성의 정신이 처참하게 살해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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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