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담쟁이 넝쿨의 양심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담쟁이 넝쿨의 양심
  • 나무신문
  • 승인 201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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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담쟁이 넝쿨은 엉키고 엉킨 종족을 이끌고 담벽을 타고 올라간다. 지칠 줄 모르는 유격대의 선봉장처럼 회의도 의심도 없이 위쪽으로 몸을 이끈다. 오르고 올라서 담 위에 마침내 수줍은 손을 올려놓는다. 담쟁이가 오르는 담 위에는 그 어떤 영예도 없다.

그 노고를 기리는 군악대의 축가도 없다. 초록으로 흠뻑 젖은 자신의 몸을 햇살 아래에 널어놓은 담쟁이가 할 일은 실타래처럼 엉키고설킨 종족의 혼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연민하는 것. 담쟁이는 꽃처럼 고고하게 비상할 수 있지만 끝내 종족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줄기를 부여잡고 있는 수천수만의 종족의 슬픔을 털어내지 못한다. 그게 담쟁이 넝쿨의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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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