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돌계단의 추억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돌계단의 추억
  • 나무신문
  • 승인 201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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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우리는 모두 돌계단을 마음속에 넣어두고 산다. 돌계단은 일상의 배경에 놓인 거룩한 제단이다. 우리는 저 돌계단 앞에서 가난해서 술 취한 아버지의 손에 떠밀려 술심부름을 해보았고, 우리는 저 돌계단 앞에서 준비물을 미처 챙기지 못해 다시 뛰어가는 동생의 뒷머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저 돌계단 앞에서 사랑하고 사랑해서 차마 놓고 싶지 않은 연인의 손을 놓아본 적 있고, 우리는 저 돌계단 앞에서 새벽기도에 가시는 어머니의 펄럭이는 칫맛자락을 본 적도 있다. 우리는 저 돌계단에서 흘레붙은 암숫개의 안간힘을 보았고, 우리는 저 돌계단 앞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돌계단은 이제나저제나 꿋꿋하게 생을 버티고 앉아서 굴욕을 견디며 존재하는 것들의 설움을 껴안는다. 비가 오면 빗물이 흐르고 눈이 오면 눈이 쌓인다. 계단의 그늘진 돌틈에는 이끼라는 생명이 붙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아침에 내려왔던 돌계단을 저녁엔 도로 올라가야 하듯, 그 어느 것도 영원한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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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