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비밀 정원 백사실계곡
서울의 비밀 정원 백사실계곡
  • 나무신문
  • 승인 201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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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 백사실계곡에서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잡는 아이들. ‘동천洞天’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 유명한 ‘동천’이 있었으니 북악산 자락의 백사실계곡이 그곳이다. 백사실계곡으로 가는 길은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 길이다.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세검정 전에 있는 ‘하림각’ 정류장에 내려 세검정 삼거리 쪽으로 걷는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정자 하나가 보인다. 세검정이다. 그 아래로 냇물이 흐르는데 물이 맑다.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서울에서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자하슈퍼를 지나 조금 더 가면 길 오른쪽 골목 입구에 ‘불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부처바위’ 쯤으로 여기며 바위를 지나 골목으로 올라가는데 집채 보다 큰 바위 위로 졸졸 물이 흐른다. 더 오래 전 과거 산동네 골목의 느낌이다. 어느 집 바깥벽에 ‘백사실 가는 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친절한 안내를 따라 계단을 올라 걷는다. 골목을 벗어나니 커다란 바위 위로 물이 미끄러지듯 흐르고 그 위에는 작은 폭포가 있다. 폭포 뒤로는 ‘현통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자동차 굉음으로 가득 찬 도로에서 벗어나 20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시골 한적한 산속에나 있을 것 같은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 백사실계곡에 있는 연못. 연못 옆에 한옥의 주춧돌들이 놓여 있다.
절 옆 바위계곡을 건너 숲길로 들어간다. 하늘을 가린 푸른 숲 속으로 이어지는 흙길은 여행자의 발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오솔길 옆으로 졸졸 거리며 물이 흐른다. 백사실계곡이다. 계곡이 있는 숲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조선시대 사람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로 추정 되는 곳이다.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연못이 있고 연못 옆에는 기둥을 받쳤을 것 같은 주춧돌이 땅에 박혀 있다. 이곳이 ‘백석동천’으로 불리는 곳인데 ‘백석’은 ‘백악’ 즉 ‘북악산’을 말한다. 그러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 되겠다.


예로부터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두고 ‘백사실계곡’이라고 불렀다. 이는 조선 시대 사람 이항복의 호가 ‘백사’이기 때문에 그가 지내는 계곡 이름을 ‘백사실’로 불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계곡 옆에 ‘이곳에 도롱뇽이 산다’는 내용의  팻말이 있다. 연못 주변 숲 그늘에 앉아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연못을 지나 계곡 위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고개를 숙여 무엇인가 바라보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눈길을 떼지 못하며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에게 이 계곡은 살아 있는 학교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서 흙길도 끝난다. 이어지는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자하문 쪽에서 올라오는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산모퉁이 카페’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갑자기 눈앞에 북악산과 산에 세워진 서울성곽이 나타난다. 그 풍경 또한 이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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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