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잠빅의 툰두루 식물원
모잠빅의 툰두루 식물원
  • 나무신문
  • 승인 2010.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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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세계의 식물원- 권주혁 이건산업 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 초빙교수

 

▲ 마푸토의 툰두루 식물원.

포르투갈의 항해가이며 탐험가인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양으로 들어온 뒤 1498년 3월 2일, 아프리카 동남부 해안에 있는 퀴린바스(Quirinbas)제도의 한 작은 섬 근처에 닻을 내렸다. 이 섬은 모잠빅(Mozambique) 섬으로서 오늘날 독립국 모잠빅의 나라 이름은 이 섬에서 연유하였다. 아프리카 대륙 동남부에 위치한 모잠빅의 국토 면적은 80만㎢로서 한반도의 약 4배 크기이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모잠빅의 수도 마푸토(Maputo)는 모잠빅의 가장 남단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도시로서 포르투갈 식민시대부터 이 나라 경제와 정치의 중심지이다.

원래 이 지역은 한번 물린 사람은 대부분 생명을 잃게 되는 체체(Tsetse)파리, 모기를 비롯한 많은 독충(毒蟲)과 풍토병 때문에 수세기 전에는 서부 아프리카와 함께 ‘유럽인의 묘지’라고 불려지던 곳이다. 그러나 워낙 항구조건이 좋으므로 마푸토 만(灣)은 무역항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200년 동안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독립 이전에는 포르투갈 탐험가의 이름을 따라서 ‘로렌소 마르케’라고 불려지던 이 항구도시는 독립이 되자 마푸토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마푸토는 이 도시 동남쪽 20km 지점에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있는 강 이름이다.


오늘날 마푸토에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에 건설한, 많은 유서 깊은 건물을 볼 수 있다. 비록 경제는 어려워 국민생활은 풍족하지 못하지만 도시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마푸토 만은 거주민과 방문객의 마음을 풍족하게 한다. 마푸토 시가는 마푸토만을 내려 보면서 경사가 되어 있다. 특히, 포르투갈 시대에 지은 자연사 박물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푸토만의 확 터지고 아름다운 경치는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해안 근처에는 포르투갈인들이 건축해 놓은 군사 요새가 있고 이 요새 안에는 당시 포르투갈인들이 사용하였던 구식 대포, 군용 마차와 당시 기록들이 전시되어 오늘날은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내 중심에서 이 요새로 내려 가다보면, 길 옆에 높은 나무들이 쭉쭉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툰두루 식물원(Jardin Tunduru)이다. 툰두루는 모잠빅의 북쪽 이웃 나라인 탄자니아의 한 지역 이름이다.

그곳에서 모잠빅의 독립 운동가들이 모여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므로, 이를 기념하여 식물원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가로, 세로 약 300m 정사각형인 이 식물원은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에 조성되었다. 19세기 초에는 해안에 가까웠던 이 지역이 늪지대였으므로 이곳에 정착하였던 인도인들이 야채를 재배하였었다. 그러던 중 1887년부터 주민들이 꽃을 심기시작하면서 1900년부터는 제법 모양새를 갖춘 정원으로 변모되었다.

황폐한 늪지대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변해가는 것을 본 포르투갈 공무원들 가운데 식물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 이 정원을 제대로 된 식물원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하였다. 마침, 그곳에는 무역업으로 돈을 많이 번 영국인 하니(Thomas Honey)라는 사업가가 개인의 시간과 재산을 투자하여 그 정원을 가꾸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므로 1907년에, 포르투갈 식민지 정부는 그 땅을 하니에게 할양해 주고, 좋은 식물원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업을 하면서도, 평소에 식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하니는 포르투갈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남아메리카, 북아프리카, 남부유럽, 멕시코, 인도네시아, 호주, 중국, 마다가스칼 등지에서 각종 수목의 씨앗과 묘목을 구입하여, 이곳에 식재하였다. 이 식물원에 식재되어 있는 뽕나무과(Moraceae)의 수목들(예, Ficus sycomorus 등)을 보면 수목의 높이와 직경을 볼 때 1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식물, 특히 나무를 좋아하던 하니는 아예 집을 식물원 안, 한 쪽 구석에 지어놓고 그곳에서 살면서 사업도 하고, 식물원도 가꾸었다. 후일 하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식물원을 시(市)에 기증하였다.


해안 쪽에서 보았을 때 식물원의 오른쪽 한 면에는 이 나라의 대법원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왼쪽 한 면에 있는 입구(중앙 입구)에는 이 나라 초대 대통령 마첼(Samora Machel)의 동상이 서있다. 하니가 살던 집 옆에는 큰 규모의 온상도 있는데 예산부족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하니의 집과 함께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 이 식물원을 떠나면서 마음이 아팠다. 참고로, 19세말과 20세기초,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지배권을 얻기 위해, 영국이 남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던 네덜란드인들과 전쟁(보아전쟁)을 할 때, 당시 영국 모닝포스트지의 특파원이었던 젊은 신문기자 한 명이 네덜란드인들을 피해서, 남아프리카에서 육로를 거쳐 탈출하여 3일 만인 1899년 12월 21일, 마푸토에 있는 영국 대사관에 도착하였다. 그 기자는 후일 영국 수상이 된 처칠이고, 그 영국 대사관은 식물원과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서 오늘날도 1세기 전과 같은 장소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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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