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골짜기에 서린 문향(文香)
성북동 골짜기에 서린 문향(文香)
  • 나무신문
  • 승인 2010.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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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심우장과 수연산방

   
▲ 1.심우장 건물 2.이태준 가족 사진 3.이태준 집 비 4.이태준 집 5.이태준 집과 뜰 6.이태준 집 우물
성북동 골짜기에 문향(文香)이 서렸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과 대표적인 월북작가 이태준이 그 곳에 살았었다. 
한용운이 살았던 집이 심우장이다. 집은 백십 여 평의 터에 스무 평 남짓한 크기로 지어졌다. 집을 지을 때 일화가 있다. 심우장은 북향집인데, 일제강점기 총독부 건물이 있는 남쪽으로 문을 내기 싫어서 그쪽과 등을 돌려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어진 이 집은 서울시가 1984년 지방기념물로 지정했다. 하지만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1991년 훼손 위기를 맞았다. 1990년에는 대문에 대못이 박혀 있었고, 동네 아이들이 담을 넘어 들어가 집 안 곳곳을 망가뜨렸다. 기와는 내려앉고 기둥은 썩어가고 있었다. 이에 각계에서 심우장 보수를 요청했고 1991년 6월 보수공사를 마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용운은 이 집에서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다. 그의 일상은 매일 새벽 5시에 시작됐다. 좌선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몰두 했다. 음식은 채식을 주로 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가끔 술도 즐겼다고 전해진다.  한용운은 심우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수연산방은 월북작가 해금에 따라 1988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 된 소설가 이태준이 1930년대 초반부터 1943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백이십 여 평의 터에 스물서너 평 정도 되는 기와집이다. 대청마루가 높고 마당이 깊어 아늑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이태준의 집은 철원에 있었는데 그곳 집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 등을 그대로 옮겨 집을 지었다. 이태준은 이집을 수연산방, 기영세가 등으로 불렀다. 집 이름 말고도 각 방에 죽향루 문향루 상심루 등의 이름을 지어 새겨 추녀 아래 걸었다. 그 중 상심루는 6.25 전쟁 때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졌다. 지금은 그 자리에 차와 간단한 술을 즐길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본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대청을 가운데 두고 정면과 양쪽으로 방이 하나씩 있다. 정면은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양쪽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방이다. 손님방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느긋한 햇살이 든다. 햇살은 한지와 창호지를 통과하면서 그 낱낱의 입자가 드러나고 파스텔톤으로 그윽하게 온 방안에 퍼진다. 햇살의 밀도를 느낄 수 있는 그 공간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여유이자 행복이다.


성북동 쌍다리 정류소에서 내려 찻길 따라 계속 올라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수연산방이 먼저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길 왼쪽에 심우장으로 오르는 좁고 가파른 골목이 나온다. 심우장을 먼저 둘러보고 난 뒤 수연산방에서 넉넉한 햇살과 차 한 잔의 여유를 맛보는 게 순서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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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