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말아내는 국수, 대를 이어 찾아오는 손님
대를 이어 말아내는 국수, 대를 이어 찾아오는 손님
  • 나무신문
  • 승인 201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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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천서리

▲ 여주 천서리 막국수와 수육 햇살 좋은 일요일 아침에 양평으로 가는 6번 국도를 탔다. 양평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여주 방향 37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그 길에 천서리 막국수 마을이 있었다. 마을에는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지만 음식점 간판에 ‘막국수’를 넣지 않은 집이 거의 없었다. <홍원막국수>집으로 들어갔다. 차림표에 비빔국수와 물국수, 그리고 온면이 있었는데 비빔국수와 물국수를 각각 한 그릇씩 시켰다. 막국수는 냉면 사발에 한가득 담겨 나왔다. 서울시내 보통 냉면 집 보다 양이 약간 많은 듯 했다. 막국수 향이 다른 집보다 강했다. 향에서 받은 첫 느낌 같이 첫 맛도 괜찮았다. 면도 질기지 않았다. 비빔장 맛이 특별했다. 짜지 않으면서 매웠다. 하지만 약간 텁텁했다. 그만큼 양념이 진했던 것이다. 양념의 향이 다른 집 보다 더 강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 여주 천서리 막국수(물국수)
양념 맛을 내는데 가장 중요한 게 고춧가루인데 이 집에서는 햇볕에 직접 말린 '양근'을 쓴다. 막국수의 잔잔한 맛을 책임지는 부재료는 오이와 무, 깨소금, 고기, 김 등을 쓴다. 무와 고기가 들어가는 게 색달랐다. 무의 시원함과 고기의 고소함이 냉면 비빔장과 냉면 면발의 맛과 어울려 함께 씹으면 시원하면서 고소한 첫 맛에 이어 맵고 개운한 뒷맛이 오래도록 입에 남는다.


국수 재료는 메밀과 고구마다. 메밀은 봉평에서 나는 메밀과 중국산 메밀을 섞어서 쓴다. 여기에 고구마 전분이 들어가는데 전분을 만드는 재료는 여주 특산물인 여주 고구마다.
천서리 냉면 맛은 중후하면서 묵직한 게 특징이다. 여기에 면발과 부재료의 맛이 매운 맛 속에서도 각각 살아서 톡톡 튄다. 그 모든 맛을 아우르는 것은 이 맛 저 맛이 엉켜 녹고 스며들어 만드는 제3의 맛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몇몇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한국전쟁 이전에 이포나루에서 국밥과 국수를 말아 팔고 술도 함께 팔았다고 한다. 이 사실에 기초해 볼 때 이포나루에는 그 이전 조선시대 혹은 더 오래 전부터 나루를 오가는 사람들의 허기와 팍팍한 발걸음을 달래주던 주막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굳어진다.


천서리를 막국수 마을로 만들고, 천서리 막국수의 맛을 만든 이홍순 씨 또한 그 당시 이포나루에서 밥과 술을 팔던 사람이었다. 이포나루의 막국수 역사는 한국전쟁 때 잠깐 끊어 졌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홍순 씨는 천서리를 잠시 떠났다. 그렇다고 막국수 만드는 일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그는 곡수라는 곳에서 식당 문을 열게 됐다. 그리고 약 30여 년 전에 지금의 자리인 천서리로 식당을 옮기고 막국수를 다시 팔기 시작했다. 그 맛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인 아저씨는 식당 한쪽 테이블을 가리키며 “우리 집도 대를 이어 국수를 말고 있지만 저 손님들도 대를 이어 우리 집을 찾아 주네요”라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