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제 시간에 맞춰서 왔지만 어린 나에게는 한나절이나 늦은 것처럼 느껴졌다. 뿌연 먼지 날리며 천천히 달려오는 버스를 보면 나는
신작로를 달려 버스정류장에 버스보다 먼저 도착했다. 차문이 열리고 엄마가 내려오면 나는 엄마 품에 안겨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나이가 들고 도로가 새로 나면서 차들은 더 이상 옛 길로 다니지 않았다. 한동안 내 마음 속에서도 그 옛길은 지워지고 없었다.
추억이 사는 이유가 되는 시간이 나에게도 왔고 나는 잊고 있었던 그 옛길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날 뿌연 먼지 날리며 천천히 달려오던 엄마의
버스가 왔던 길을 두 발로 걷겠다고 생각했다.
▲ 괴산읍 시내버스 정류장 부근에 있는 올갱이국 파는 집. | ||
우리가 내린 곳은 ‘오수’라는 마을이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조금 걸었다. 주유소를 지나니 옛길이 나왔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의 향기를 추억하며 옛 길을 걸었다.
버스 한 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이 길을 그날 그 버스는 달렸을 것이다. 푹신한 흙길이 이어졌고 억새풀 넘실대는 실개천에 싱그러운
봄바람이 일었다. 송곳처럼 꽂혀 있던 땡볕 아래 미루나무 그림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누군가 미루나무를 뽑아 버리고 은행나무를 심었다. 추억과
현재가 같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그 옛날 미루나무가 자꾸 떠오르는 건 아마도 엄마를 기다리던 내 마음이 그토록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수에서부터 4킬로미터 정도 걸었을까? 물수제비뜨며 엄마를 기다리던 갈매실이 나왔다. 한약방이 있던 자리에는 그 옛날 나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갈매실 다리를 건너는데 순간 흙먼지를 실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바람을 등지고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는 ‘갈매실’ 시냇가의 정령이 오랜 만에 이곳을 찾은 나를 반기는 건 아닌가하고 말이다.
한참 동안 갈매실 물가에 앉아 바람에 볼을 내밀고 시냇물에 손을 적시고 물수제비도 뜨면서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는 없었지만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버스 한 대가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