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御命’이 필요하다
우리시대의 ‘御命’이 필요하다
  • 나무신문
  • 승인 2009.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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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짓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나무를 베어내야 할 때에는 거꾸로 된 ‘어명’(御命)을 이용했다. 특히 건축용으로 쓰일 큰 나무들은 그 안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나무 없이 큰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신이 깃들어 있는 나무라고 할지라도 베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승과 저승의 갈등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御命’이다.


방법은 이렇다. 큼지막하게 ‘御命’이라고 적은 종이를 베어낼 나무에 거꾸로 붙인 다음, ‘어명이요’를 세 번 외치고 나무를 베는 것이다. ‘나무를 베어 쓰라는 임금님의 명령이 내려졌다’고 신에게 ‘공갈’을 친 셈이다. 지금으로 치면 공갈협박죄 내지 공문서위조죄에 해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御命’을 거꾸로 붙임으로써 ‘일말의 양심’을 지켜낸 우리 조상들의 해학이 돋보인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이처럼 나무 하나 베어내는 일에도 경계(警戒)와 해학(諧謔)이 어우러진 민속을 만들어낼 만큼 조심한 것이 비단, 그 안에 깃든 신만을 두려워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나무의 베어짐을 아쉬워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임이 농후해 보인다. 단지 경계만이 목적이었다면 규범을 만들어 조심하고 단속하면 그만이다.


최근 목질보드류 생산업계와 벌채업계 관계자들이 무릎을 맞대고 ‘국산목재 공급 활성화를 위한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에서 나온 얘기 중 하나가 바로 ‘벌채는 곧 환경파괴라는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이 일은 산림청이 적극적으로 대국민 홍보에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御命’ 한 장 써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 산림청 홈페이지를 바꾸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푸른 숲’만 강조된 지금의 홈페이지 절반을 벌채와 제재, 목조주택과 같은 목재이용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데 할애해 달라는 것이다.


부드럽고 보기 좋으며 말랑말랑하지만, 진짜 ‘御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목재이용이 곧 환경보호라는 점에서 가짜는 필요치도 않다. 시쳇말로 산림청이 ‘엣지’있게 행동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