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오의 쇄설/대나무 아래 부는 맑은 바람
유응오의 쇄설/대나무 아래 부는 맑은 바람
  • 나무신문
  • 승인 2009.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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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빛깔을 보고 싶은가(欲見太古色) 밝은 저 달 하늘을 도네(好月天中回)
태고의 소리를 듣고 싶은가(欲聞太古聲) 맑은 바람 대나무 아래서 불어오네(淸風竹下來)
태고의 이치를 알고 싶은가(欲知太古理) 가슴 가득 가여워함 바로 인일세(惻隱滿腔仁)
이 빛깔 보고 이 소리 듣고 이 이치 알면(見此色 聞此聲 知此理) 그대 바로 태고의 사람이리(便是太古人)
-이만부의 <태고의 노래(太古吟)>


며칠 전 좋은 책 한 권을 읽었다. 그 책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장 흥선스님이 쓴 《맑은 바람 드는 집(아름다운 인연)》이다. 책 제목은 한때 학승들이 지혜의 칼을 벼리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청풍료(淸風寮)>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책에서 스님은 “자연은 영원한 교사”라고 정의한다. 그런가하면 스님은 숲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숲, 온 생명이 깃드는 곳입니다. 숲에 뭇 생명이 잉태되고 성장하고 사멸해갑니다. 확실히 숲은 생명의 공간, 살림의 공간입니다. 그곳에서는 온갖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삶을 누리는 곳이 숲입니다. <중략> 아마도 숲에 깃든 이런 함의를 공유하며 절집에서 쓰이는 말이 ‘총림(叢林)’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략> 풀과 나무들이 가지런히 성장해가듯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나란히 정진하며 수행의 깊이를 더해가는 곳이 총림이라는 설명이 되겠습니다.


《맑은 바람 드는 집》에는 자연과 일상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맑은 감성이 있다. ‘겨울산’을 ‘하얀 침묵’으로, ‘길섶 코스모스 무더기’를 ‘낮에 뜬 은하수’로 비유하는 스님의 감성이 유장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스님의 글이 ‘무책임한 자연에의 비유’만을 들어 현실을 도피하는 신선도 특유의 단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님의 글에는 자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을 닮아 눈망울이 맑고 웃음이 고운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스님은 두순학의 <눈을 보며(對雪)〉를 인용한 뒤 ‘솜옷 입은 공자여(擁袍公子莫言冷), 저 길 속에 맨발의 나무꾼이 가느니(中有樵夫跣足行)’라는 구절을 연상시키는 일화를 소개한다. 그 일화는 절에서 바느질을 하던 무애행이라는 노보살의 이야기다. 스님이 세월이 지나도 노보살을 잊지 못하는 것은 노보살에게서 누비 두루마기 한 벌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아끼던 누비 두루마기를 빨면서 흐릿하게 빠지는 먹물 빛깔 속에서 ‘노보살의 희미한 미소’를 본다. 두루마기의 먹물 빛깔을 노보살의 미소로 표현한 스님의 글재주도 빼어나지만, 고적한 한 여인의 삶을 그 법명인 ‘무애행’으로 승화시키는 자비(慈悲)로운 시선이 더욱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