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 한국 현대 건축의 라이벌
문화칼럼 - 한국 현대 건축의 라이벌
  • 김도언
  • 승인 2007.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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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혹은 예술의 진화와 발전은 어떤 길항 관계에 의해 그 동인이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길항은 흔히 라이벌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음악이나 미술 분야에서 수많은 라이벌들이 펼친 열정적인 예술혼을 익히 알고 있다.

건축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지금 얘기하려는 김수근과 김중업이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던 한국의 현대 건축을 단기간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불세출의 건축가이자 장인이었다. 나이는 김중업이 김수근보다 10년 정도 많았지만 두 사람이 활동한 시기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거의 겹친다. 그랬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1960년대 중반, 김수근이 부여박물관 설계를 맡았을 때, 일본의 신사 형식을 모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때 김중업은 그 의혹을 제기한 쪽에 서서 김수근을 비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일본에서 공부한 김수근은 상당히 여성적이고 섬세한 건축을 했으며 협업과 소통을 중요시했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그의 곁에 수많은 동료와 제자들이 모여들게 했다. 승효상, 민현식, 장세양 같은 이들이 그의 직계 제자들이다. 그는 상당히 정치적인 계산이 빠른 사람이기도 했는데,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건축가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김수근과는 달리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 김중업은 남성적이고 선이 굵은 스타일의 건축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세계 현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르 꼬르뷔지에의 애제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그는 김수근과는 달리 과묵하고 독립적인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에겐 딱히 특기할 만한 제자나 동료가 없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사뭇 달랐지만, 한국의 현대 건축에 대한 이들의 헌신과 노력은 누가 덜하거나 더하지도 않은, 순정하고 열정적인 것이었다. 김수근은 잠실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설계해서, 한국적인 미를 세계만방에 과시했고, 김중업은, 올림픽 공원 평화의 탑을 설계해서 독특한 조형미로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모두 갔지만 이들이 남긴 건축은 시간을 거스르며 찬란하게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