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여행과상념/옥천 이지당
장태동의여행과상념/옥천 이지당
  • 나무신문
  • 승인 2009.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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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풍경들

   
▲ 숲속의 집. 이지당.
조선중기 서당이었던 ‘이지당’은 옥천 읍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옥천군청에서 옥천읍내 쪽으로 가는 길에 군청 지나 첫 사거리에서 우회전 한 뒤 삼양 삼거리에서 두시방향(대전 방면)으로 간다. 조금 가다 보면 다리 쪽으로 우회전 하는 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우회전 하면서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가다가 왼쪽에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서 우회전하면 차를 세울만한 곳이 나온다.


우리는 그곳에 차를 세우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하늘을 가린 숲이 사람을 감싸 안는다. 숲은 녹색의 높은 천장 아래 거대하면서도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나무 향기 풀향기 흙향기가 온몸을 감싸고 땀구멍으로 코로 입으로 들어와 속 때를 다 벗겨 내는 기분이다. 그렇게 뿌리가 드러난 나무와 돌, 흙과 낙엽이 깔린 숲길을 50여 미터 정도 걸어가니 ‘이지당’이다.


오래된 나무기둥은 숲 속의 나무처럼 살아 있는 것 같다. 구불거리는 모양을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깎아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었다. 기와지붕에 풀이 돋았다. 숲 속 옛 집에서 역사의 향기가 배어난다. 보고 있어도 마음 편안해 지는 그곳에 앉았다. 


옛날에는 이곳이 서당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모여 글을 배우던 곳이다. 우거진 숲 속의 단아한 기와지붕 아래 글 읽는 소리가 신록처럼 번졌으리라. 또한 옥천의 지식인들이 모여 학문과 사상을 나누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겠지. 서당 건물 앞으로 물이 흐른다. 수량은 적지만 물길이 넓다. 장마철이면 푸른 숲을 닮은 푸른 물이 가득 흐를 것 같다. 


숲이 감싸고 있는 옛 한옥에 올라앉는 것 자체가 여행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중봉 조헌 선생이 각신서당을 만들었는데 그게 이지당의 전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헌은 의병을 이끌고 승병 영규 등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한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왜적을 막기 위해 의병을 이끌고 금산으로 향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그는 물론이고 그를 따르던 의병이 모두 전사한다. 금산군 금성면에 가면 그들의 유골을 모아 안치한 '칠백의 총'이 있다.


중봉 조헌 선생이 죽은 뒤 10여 년이 지나고 우암 송시열 선생이 태어난다. 그는 출사 후 노론의 거두이자 재상으로 또 주자학의 대가로 그 명예와 권세가 하늘 아래 대단했다. 그런 그가 각신서당을 찾아와서 중봉 조헌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이지당’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지당을 한 눈에 보려면 숲을 나와야 한다. 숲을 나와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서 좌회전. 좁을 도로를 따라 조금만 움직이면 왼쪽으로 숲속에 웅크리고 있는 이지당이 보인다. 산 속에 있으면서 산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