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오의 쇄설/‘대꽃이 피는 마을’로의 여행
유응오의 쇄설/‘대꽃이 피는 마을’로의 여행
  • 나무신문
  • 승인 2009.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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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자다 깨어서 거실을 거닐다가 환청을 들었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대밭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였다. 이명(耳鳴)을 듣자, 무슨 배경처럼 시골집을 지키던 뒤란의 대밭이 떠올랐다. 겨울이면 눈이 내리고, 그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대밭에서는 어떤 형형한 빛이 발하곤 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어릴 적 나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고운 눈밭에 서 있는 대나무들을 바라보곤 했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들은 가는 허리로 흔들리면서 가냘픈 숨소리를 내곤 했다. 그 신이하다 못해 귀기 어린 소리가 문득 떠올랐던 이유가 뭘까?
환청을 들은 뒤 며칠 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시인의 <죽편1>이라는 시편이다. 이 시편의 부제는 ‘여행’이다. 극도로 언어가 절제된 시를 읽고 나면, 화선지에 대나무를 그려놓은 동양화가 떠오른다. 비워둠으로써 충만한 여백의 미학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는 대나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인간의 삶이 여행과 같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여행은 땅 속 깊이 뿌리를 두고 올라온 새 싹이 굵어져 밑둥이 되고, 한 칸 한 칸 하늘로 발돋움을 하다가, 드디어 꽃을 피우는 삶의 여정이다.

대나무는 100년만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리고, 꽃 피는 찰나 대나무는 수명을 다한다고 한다. 칸칸마다 속을 비운 끝에야 꽃을 피운다고 하니, 그 꽃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새해가 밝았다. 필자도 어느덧 서른여덟이다. 철딱서니 없기는 여전한데, 어느덧 중년을 눈앞에 바라본다 생각하니, 아득하다. 아마도 불현듯 대나무가 스적이는 환청을 들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것은 나무에게는 나이테를 한 번도 늘리는 것이다. 나이테를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늘리는 대나무의 입장에서는 한 칸 더 발돋움을 하는 것이다. 푸른 기차를 타고 백 년 동안 달려서야 볼 수 있다는, 대꽃이 피는 마을. 거기는 어딜까? 모를 일이다. 그저, 여기서부터, 아득히 멀다고 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