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전남 순천 광원암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전남 순천 광원암
  • 나무신문
  • 승인 2009.01.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자로 가는 길

▲ 편백나무 숲 광원암으로 가는 길은 생각 보다 찾기 어려웠다. 사람 다니는 오솔길 옆이 온통 편백나무다. 해는 떴는데 숲은 어둑어둑하다. 습한 공기가 느껴진다. 어둡고 습한 곳이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나중에 조사해서 알았지만, 편백나무 추출물 피톤치드가 공기를 맑고 깨끗하게 한단다. 그런 이유로 삼림욕을 하기도 좋고 새집증후군이나 진드기를 없애는 데도 한 몫 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백나무 톱밥이나 가공품을 집에 두고 그 향을 즐기거나 특정한 효능을 기대하기도 한다는데, 사실 나는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저 숲이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겨 내가 그 숲 속에 속하는 게 좋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대나무 숲이 나온다. 대숲은 편백나무 숲보다 더 촘촘하다. 길 아닌 곳으로는 갈 수 없다. 대나무가 숲을 만들고 길을 만들고 굴을 만들었다. 대나무 사이로 난 작은 틈새로 햇빛이 가닥으로 갈라져 스며든다. 대나무는 보통 수십일 정도 자라면 다 자란다. 그 다음부터는 안으로 굳어지는 삶이 있을 뿐이다. 몇 십 년을 살았어도 마음에 옹이 하나 맺지 못한, 지나온 길이 일렁이는 대숲 바람에 흔들린다. ▲ 찻물을 따르는 스님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스님이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스님 뵈러 왔다’고 말하니까 손에 낀 목장갑을 벗으면서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내가 만나고자 했던 그 스님이었다. 스님은 승복 바지를 툴툴 털고 암자로 걸었다. 스님은 평소에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암자 뒤 차밭에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끊임없이 정진하는 시간이야 엄격하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뒤 스님은 나를 암자 안으로 안내했다. 찻물이 끓고 차향이 암자에 그윽하게 퍼진다. 산속을 헤맸던 정신이 차분해진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스님과 나는 한 시간 반 동안 얘기를 나눴다. 얘기라기보다는 내가 묻고 스님은 답해 주는 형식의 대화였다. 여러 가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했는데 내 처지와 빗대었을 때 절실한 말 한마디는 ‘죽은 물고기는 물길을 따라 흘러내려 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는 말이었다.

그 말에 생명의 힘과 삶의 경건함을 느꼈다. ‘거슬러 올라가는’ 그 끝에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에 대한 성찰이 곧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통하는 길일 것인데, 그것을 놓쳤던 순간순간이 이어져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고 삶이 되지는 않았는지. 아귀다툼 같은 세상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위에는 분명 무엇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이상을 검증받고 이상이 흔들리면 다시 정진할 줄 아는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