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전남 장흥 상선약수마을과 매생이탕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전남 장흥 상선약수마을과 매생이탕
  • 나무신문
  • 승인 2008.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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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바다
▲ 상선 약수마을 진입로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겨울 바다 찬 기운을 머금고서야 매생이는 제 맛을 낸다.
매생이탕은 꼭 뚝배기에 끓여야 제 맛이 난다. 갓 끓여 나온 탕이었지만 보글거리지 않으면서 김만 피어나는 것이다. 그 뜨거운 열기를 매생이 자체가 다 끌어안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신 뒤 입에 넣는 순간 혀에 감기는 촉감이 너무 부드러웠다. 여인의 옥 같은 피부에서 미끄러지는 비단의 촉감 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혀를 감싸고 목구멍으로 내려간다.

몇 숟가락 뜨고 난 뒤 그 맛을 조심스럽게 음미했다. 김의 세련된 맛도 아니고 미역의 진한 맛도 아니었다. 구수한 맛의 깊이가 바다와 같았다. 거기에 바지락, 굴, 날가지 등 해산물이 들어가는 데 먹을수록 진해지는 그 맛은 아마도 뚝배기에서 함께 들끓어 하나의 맛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칼바람 겨울바다를 이겨내고 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매생이탕은 뚝배기에 담긴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일이다. 겨울이 가고 또 다른 봄이 오면 아마도 매생이의 그윽하고 깊은 맛이 또 생각날 것 같다. 뼈를 얼리는 추위라야 그 뜨거운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매생이탕. 지금 내 목구멍으로 한 숟가락의 바다가 넘어 간다. 비단보다 부드러운 촉감은 자극 하나 없이 풍부한 맛을 낸다.

전날 먹은 술기운이 풀리지 않았는데 매생이탕 한 그릇에 등줄기에 땀이 구른다. 주인아줌마에게 “이거 해장국으로도 손색없겠는데요”하니 아줌마는 “이걸 먹어야 속이 풀린다는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단골자랑을 한다.

   
▲ 매생이탕
매생이국은 밥을 말지 않고 밥 따로 국 따로 먹는 게 제격이라는데, 어떤 사람은 그 국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매생이떡국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 것을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부드러운 떡과 매생의 맛이 어떻게 어울릴까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술에 찌든 속도 풀리고 타지에 나온 여행자의 마음도 녹이는 그 말 한마디에 다음 여행지인 상선약수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 매생이탕처럼 그윽하고 부드러워진다. 

상선 약수마을은 양지바른 곳에 꾸며진 정원 같다. 마을 진입로 양쪽에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이 시골정취와 어울려 정겨운 느낌이 든다. 그 길이 끝나고 마을로 막 들어서려는 곳에 대나무산림욕장이 있다. 대숲 길을 걸어 산책길을 따르다 보면 편백나무산림욕장을 만나게 된다.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연못을 파 놓은 곳이 나오는데 해마다 5월경부터 각종 색깔의 꽃이 피어난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고즈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