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제주섬 서부에서 빛나는 세 바다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제주섬 서부에서 빛나는 세 바다
  • 나무신문
  • 승인 2008.07.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틀 째 과음에도 숙취가 없다. 제주 바다의 기운을 머금은 신선한 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의 때조차 씻어줄 것 같은 게 제주의 공기다. 햇볕 반짝이는 제주의 아침 공기는 더욱더 그렇다.

해장라면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민박집을 나섰다. 민박집과 가장 가까운 바다는 금녕해수욕장이었다. 걸어도 5분이 채 안 걸릴 것 같다. 옥빛 바다와 야자수가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용암이 흘러내려 바다에 이르러 완전히 굳어버렸다. 현무암 갯바위가 옥빛 바다 아래에 있다. 흰 모래 위를 넘실대는 투명한 바닷물은 모래 색을 닮았다. 

협재해수욕장은 금녕해수욕장의 모래톱 건너편에 있는, 바로 옆 해수욕장이었다. 옥빛바다가 그대로 이어진다. 갯바위가 바다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 그 위를 걸어 바다멀리 나간다. 바다에서 해안이 보인다. 하얀 모래사장으로 밀려가는 옥빛바닷물에 햇볕이 부서져 눈이 부시다. 해수욕장 뒤 마을은 이름 없는 해변 마을이다. 대부분 민박을 한다. 부서진 돌담 사이로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났다. ‘민박’ 이라는 푯말을 내건 집 대문은 다 열려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소리가 골목에서 들린다. 

텃밭 울타리 돌담 너머로 푸른 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보인다. 햇볕도 지루해지는 한가로운 어느 오후를 대하는 마음으로 몇 달 동안 방을 빌려 마당에 내린 햇볕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을 골목골목을 돌아 나와 해변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이 곽지해수욕장이다. 곽지해수욕장은 규모가 컸다. 그늘과 의자가 있었고 백사장도 넓었다. 옥빛 바다는 더 넓게 빛나고 있었으며 가도 가도 허리에 차지 않는 바다는 단연 세 해수욕장 가운데 최고의 바다라고 꼽을 수 있겠다.

갯바위가 뒤엉켜 기이한 형상을 만들어 놓은 곳에 앉아 우리는 바다와 바다에 빠져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2리터 가까운 플라스틱 맥주병을 들고 고개를 젖혀 목으로 넘긴다. 목구멍에서 부서지는 탄산이 옥빛 바다의 포말 같았다. 바람은 자꾸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다. 

금녕해수욕장에서 곽지해수욕장 사이 바닷길은 생활의 편린이 담긴 해안도로다. 간혹 기막힌 풍경을 간직한 채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도 있지만 돌담길과 빨래줄, 지붕 낮은 바닷가 마을이 마음을 순하게 한다. 곽지해수욕장부터 이호해수욕장 전까지 이어지는 하귀애월 해안도로는 바닷가 절벽 위에 놓인 도로다. 바다와 길이 멋들어지게 만나는 곳이다. 큰 도로로 나오려 하지 말고 가능한 대로 바다에 가까운 도로를 택해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