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강원 정선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강원 정선
  • 나무신문
  • 승인 2008.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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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이 오른다. 장이 섰다
▲ 100년이 넘은 백전리 물레방아.

새벽 다섯 시 장터에 천막이 오른다. 기둥이 서고 줄을 당기면 천막 귀퉁이에 바짝 날이 선다. 5일장을 떠도는 사람들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5일장으로 모여든다. 마늘 보따리 생강 바구니 한 두 개라도 들고 나와 하루를 다 바친다. 손에 쥐는 돈이라고는 만 원 짜리 몇 장인 날도 허다하지만 흰머리 깊은 주름에 환하게 웃는 할머니에게 돈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는 장날은 잔치날과 다를 게 없다.

그것뿐이랴. 예전에는 서커스단이 천막을 치고 공연을 하고 차력사가 나와 철사줄을 몸에 칭칭 감고 ‘으랏차차’ 소리 지르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주면 철사줄이 끊겨 나갔다. 사람들은 ‘와’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고 차력시범이 끝나면 으레 이른 바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약병이 앞에 앉은 아저씨 아줌마들 손에 들려 있었다. 양철지붕 그늘 아래에는 ‘뻥이요’를 외치는 아저씨가 있었으니 아이들에 가장 인기 있던 튀밥장사다. 둥그런 무쇠덩어리를 장작불 위에 놓고 몇 십 분 돌리고 나면 내 새끼손톱만 했던 옥수수가 아버지 엄지손톱보다 더 크게 튀겨 나오는 것이었다. 

요즘 5일장은 장 분위기가 예전 만 못하다. 서커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텔레비전에 밀려 자리를 잃었고, 뻥튀기 보다 백배 천배 더 달콤하고 고소한 먹을거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아이들은 더 이상 ‘뻥이요’ 소리에 군침 흘리며 귀를 막지 않는다.

정선장은 먹을거리가 많다. ‘올창묵’ ‘콧등치기국수’ ‘곤드레나물밥’ ‘옹심이’ ‘메밀묵죽’ 등 이름도 하나 같이 다 예쁘다. 다 찢어지게 가난 할 때 먹었던 음식이라는 데 지금은 정선 특산품 먹을거리가 됐다. 화전민이 유난히 많았던 정선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나물을 뜯어 쪄서 말린 ‘묵나물’을 먹어야 했다. 나물을 반찬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밥이자 반찬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있는 곡식 몇 톨과 함께 가마솥에서 끓여서 죽으로 먹었다고 한다. 그게 지금의 곤드레나물밥이다.

지금은 기름에 무치고 양념장을 만들어 갖은 반찬과 함께 먹게 됐다. 올창묵은 옥수수, 콧등치기국수는 메밀, 옹심이는 감자로 만든다. 다 구황식물이다. 올창묵은 그 생김새가 올챙이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단맛이 돈다. 콧등치기국수는 ‘후루룩’하며 국수면발을 빨아먹을 때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옹심이는 해장용으로도 괜찮다. 감자전분이 열을 머금고 있어 한 그릇 다 비울 때까지 쉬 식지 않는다. 각 음식마다 독특한 맛이 있어 정선장에 가면 다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주변 아우라지 강가에서 모닥불로 하룻밤을 지새울 수도 있고 동면 백전리 용소골에는 100년 전 물레방아가 아직도 돌고 있다.(2일, 7일 장. 정선 읍내 재래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