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통영에서 가장 통영다운 강구안 산기슭 마을 동피랑길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통영에서 가장 통영다운 강구안 산기슭 마을 동피랑길
  • 나무신문
  • 승인 2008.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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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헤엄치는 골목에 가보셨나요
▲ 동피랑길에서 통영의 아름다운 항구 강구안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동피랑길은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미로다. 그 골목마다 벽과 담에 그림이 그려있다.

펭귄으로 보이는 그림 옆에 나비와 나뭇가지 물고기를 그렸다. 좁은 골목길 끝은 다른 골목과 만난다. 골목 정면 벽에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바다가 골목으로 들어온 듯 했다.
그 그림을 보면서 물속의 걸음마 같은, 우주인의 유영을 흉내 내며 슬로우모션으로 걸었다.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게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골목을 벗어나 시멘트 계단이 있는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계단은 사람들 발길에 닳고 닳아 계단의 모서리가 다 없어졌다. 계단 한 쪽으로 이끼가 피어났으며 간혹 이름 모를 키 작은 풀이 듬성듬성 자라났다.  그 골목이 끝나는 담장에는 어김없이 이끼와 풀이 자라난 골목과 닮은 녹색의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괴물이 그려있었다. 다시 나와 골목을 돌아보니 골목과 집과 담이 흰색과 파란색이다. 강구안 바다에서 올려본 그 색 속으로 우리가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나도 희거나 파랗게 물들어 있을까? 그래서 나도 맑고 밝게 빛나고 있을까?

마을이 언덕에 있으니 어딘가는 분명 꼭대기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꼭대기로 오르는 골목길도 여러 갈래였고 우리는 그 길을 다 보지 않고서는 이 마을에서 내려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더 높이 더 좁은 골목으로 올라갈수록 집들은 더 허름해졌다. 쇠창살과 가시철망 넘어 보이는 마당에는 그저 낡은 장독대와 몽당빗자루와 운동화 몇 켤레가 고작이었다. 시커먼 녹이 덕지덕지 않은 담장 위 쇠창살, 가시철망을 덧댄 담장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림과 하나 된 그것들은 작은 꽃나무거나 담쟁이 넝쿨 같이 보였다.

더 높은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을 때 눈앞에 커다란 동백꽃 한 송이가 나타났다. 커다란 고무다라가 벽 아래 놓여 있고 그 앞에는 다 쓰러져가는 작고 낡은 창고가 있었다. 다라가 놓인 벽에 붉은 동백이 그려져 있다. 붉은 꽃 뚝뚝 떨어져 눕는 절절한 사연의 동백꽃도 동피랑길 어느 집 벽에서는 손 녹이고 불 밝히는 따듯한 촛불이 되었다.

이제 언덕 꼭대기다. 그곳에는 몇 채의 집이 있었다. 어떤 집 옥상에서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 모양이 만선의 깃발 같다가도, 동피랑을 찾은 여행자에게 마을이 보내는 갈채 같다가도, 알루미늄 미닫이문을 닫으며 돌아서는 할머니의 한숨으로 다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괜히 여기까지 온 것일까?’ 생각하다가도 ‘우리의 삶이 이와 다르지 않으니 우리의 희망을 이곳에서 찾으면 어떨까!’라고 자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