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경남 남해 금산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경남 남해 금산
  • 나무신문
  • 승인 2008.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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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 금산 정상 부근 바위 위에서 본 보리암과 바다.

“형 나 여기 금산이야. 여기 죽인다 죽여줘”.
몇 해 전 낮에 시간이 나서 막걸리 한 잔에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원래 낮에 혼자서 막걸리를 먹을 때는 핸드폰을 끄는데 이번에는 깜빡 했다. 오는 전화 안 받을 수도 없고 해서 받았더니 후배였다. 연락도 안 하던 놈이 전화해서 자기는 지금 남해 금산 정상에서 상주해수욕장 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해서 가고 있는 데 그 길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막걸리 한 잔에 온 몸과 마음이 평온하다 못해 나른해지던 차에 저 먼 남쪽 바다 소식을 담은 전화 한 통화가 나의 그 소중한 기분을 다 망가뜨렸던 것이다. 그땐 그랬다.

그리고 지금 내가 금산 정상에 서 있다. 몇 해 전 발신된 전화의 진원지가 여기다. 그날 멀고 먼 서울 땅 한 귀퉁이 나무그늘에 앉아 목소리를 수신하던 나처럼 서울에 있는 그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나의 목소리를 수신하고 있다. ‘금산 발 서울 착 남해 금산 소식 - “여기 죽인다 죽여”.’

나에게 전화를 했던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전했다. 일종의 릴레이 경주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흙먼지가 인다. 정상 턱 밑에까지 마을버스가 오가니 제대로 걷는 시간은 십여 분 정도나 될까. 아무튼 나는 701미터 높이의 금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부근에 거대한 바위 몇 개가 무질서하게 서있다. 바위에는 한자로 된 글이 적혀 있는데 뜻은 잘 모르겠지만 대충의 해석을 하자면 ‘이 문으로 말미암아 금산으로 오르는 길이 열린다’는 말도 있었던 것 같다. 큰 바위 두 개가 작은 틈을 두고 서 있는데 그곳이 금산으로 오르는 문이라는 소리 같았다. 상상의 한계를 없앤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순간 아이 하나가 그 문을 열고 잽싸게 달려 나왔다.

낭떠러지 같은 바위 위에 오르니 보리암 기와가 눈 아래 밟힌다. 숲과 기와지붕은 언제나 봐도 ‘조화’라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이루는 환상의 궁합이다. 그리고 절집 뒤로 벼락같은 바위가 서 있어 게으른 수행자의 어깨를 죽비로 후려치는 것 같다. 절집 앞은 푸른 숲의 바다다. 수행 정진의 끝에 이르는 해탈의 바다가 저 숲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숲이 끝나는 곳에서 사람 사는 마을이 낮게 엎드려 있다. 상주해수욕장이 있는 그 바닷가 마을이다. 그리고 해수욕장 앞으로 한려수도의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안개인지 연무인지 모를 것들이 ‘섬 기슭’을 둘러싸고 있다. 안개의 바다에 뜬 환상의 섬, 섬들은 그렇게 바다에 놓여 있었다.

돌무더기 산, 금산. 나는 그곳에서 다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저 벼랑 끝 바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을 뿐이다.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