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 97 - 백합나무(Tulip Tree, Yellow Poplar)
나무와 꽃이 있는 창 97 - 백합나무(Tulip Tree, Yellow Poplar)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4.03.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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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백합나무가 우리 집 앞에 한 그루 서 있다. 오며 가며 그 나무를 본다. 백합나무는 꽃이 튤립처럼 예쁘게 피어난다. 그래서 Tulip tree(Liriodendron Tulipifera, Magnoliaceae)라고 부른다. 북미(North America) 원산으로 백합나무 잎사귀가 캐나다 국기(國旗) 형상을 닮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늦봄에 마치 튤립-작은 종, 와인잔 모양-으로 피워 올리는 황색 꽃이 아담하고 예쁘다. 그러면서 언젠가 꽃을 달 날을 바라는 것임에랴! 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그 나무를 보며, 쓰다듬으며 잘 자라주어 우담바라처럼 꽃을 보여 줄 날을 기다리며 잘 자라기만을 기원했다. 

이 나무는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들고 수간(樹幹)이 곧게 자라는 성질(直幹性)이어서 Yellow Poplar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 넙적한 이파리며, 아담한 꽃이며, 매끈한 듯 가볍게 세로로 세할(細割)한 줄기며 단순미가 풍기는 나무가 둔덕(Mound)이 약간 진 우리 집 앞 잔디 위에 한 그루 있어 늘 안위(安慰)를 속으로 기도한다. 몇 년 전 이사올 때만 해도 키 낮았던 것이 안 보는 사이 부쩍 자라서 고국엘 갔다 와 보니 지난 해 아담한 꽃을 피웠던지 미루나무도 아닌 백합나무 꼭대기 부분부터 튤립꽃을 피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기원(祈願) 덕택인지 안 보는 사이 부쩍 자라 제 구실을 해 주니 고맙고도 기특할 따름이다. 지금은 오월로 막 들어서는 초입이다. 조막손같이 잎을 키워가는 중이다. 이젠 예전에 보여주어 안타깝게 하던 잎사귀의 병징(病徵)은 없을런지…

산과원 연구시절 백합나무를 베어 합판 제조하는 연구를 하고자 임목 육종부와 전남 장성 독림가 산으로 분양받고자 출장가던 게 생각난다. 큰 새의 깃털 혹은 물결 모양을 지으며 쑥색 비슷한 특유의 색상을 지니던 판면(單板, Veneer)이 아직도 안잊힌다. 산과원 목재이용부 가공 공장 뒤편에 두어 그루 서 있어 홍릉숲 오름 산책길에 휘어다 보던 추억이 새롭다. 홍릉 숲길 중허리 내림길 쯤에서도 만나던 나무… 지금도 이쁜 나무 주황색 허리띠를 두른 노란 튤립꽃을 피우고 있을런지. 녀석들을 휘어다 보던 이제 중년이 지난 가을의 한 사내를 기억 할런지…   /나무신문

병 앓는 백합나무를 보며

여름내 나의 애를 태웠다
내 집 나무라서 더 그랬다

가을 초(初) 노르웨이 메이플 이파리처럼
숭숭 난 병징(病徵) 잎 꺼먼 반점(斑點)에
안타까운 애비 마음뿐

어쩔 수 없이 병명도 모른 채
응급조치는 생각도 못하고
하나 둘 지는 이파리만 바라보았다

그 병 너 앓기에 내 곁을 떠나 
저 하늘나라 가는 것 아닌가 겁이 났다

부지런히 오르내리던 개미꼬마들
공생을 했던 건지
이 가을 뵈지 않고
서리에 나무 혼자
제 몸 가누고 섰다

곱게 물든 노란 단풍
곧 갈색으로 이울겠지만
홍역에 들떠서라도
눈 뚜룩이며 일어나는 아이처럼
그 자리 서서 버텨준 네가 고맙다

내일, 또 내년,
기다림의 시간
내게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
  /나무신문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