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우주인 혹은 심해의 발광체가 되다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우주인 혹은 심해의 발광체가 되다
  • 나무신문
  • 승인 2008.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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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성산일출봉 그 아래 바닷가
▲ 성산 아래 바닷가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풍경

오후로 가는 시간을 붙잡아 차를 달렸다. 성산일출봉에서 우리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일출도 아니고 산기슭 푸른 초원도 아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보고 싶었던 곳은 성산일출봉 아래 바다와 그곳에서 자맥질을 하는 해녀들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성산일출봉 앞에 섰다. 하늘 아래 푸른 들판 위에 우뚝 선 일출봉의 듬직한 모습은 믿음직스럽다. 일출봉 아래 펼쳐진 푸른 풀밭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어떤 여행자는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린다.

목책이 있는 곳까지 말을 달렸다가 다시 돌아온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람이 더 거세다. 성산일출봉에는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 바람이 없었다면 감동도 줄어들었으리라.
언덕으로 이어진 초원길을 따르지 않고 옆으로 난 바닷가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목책 밖으로 키 작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바다로 뻗어나가 절벽으로 우뚝 선 풍경이 작은 꽃들 앞에 펼쳐진다. 그 계단을 내려갔다.

아까부터 해녀들이 자맥질을 하며 무엇인가 건져 올린다. 한 번 물속에 들어가면 2~3분 동안은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웅웅’ 울려 퍼진다. 코발트빛 바다와 갯바위에 부서진 하얀 포말이 해녀의 머리 뒤에서 솟구쳐 오른다. 사람들은 해녀의 자맥질과 건져 올린 해산물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일출봉 아래 바다에서 파도가 높아진다. 바람도 더 거세게 불어온다. 검은 모래밭이 부채처럼 펼쳐진 그곳까지 바닷물이 들고 난다. 일출봉 일대를 돌아보는 관광용 모터보트는 물에 떠 있지만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바다에 나갔던 해녀들이 뭍으로 다 올라왔다.
여행자들은 너도나도 박수를 쳤다. 중국말 일본말 한국말 영어 등이 섞여 있었으나 해녀들을 향한 환호의 소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해녀가 나온 바다는 이내 잠잠해 졌다. 우리도 바다가 보이는 식탁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해녀가 건저올린 전복에 미역에 멍게를 섞어 상쾌한 바다를 향해 건배!
저 멀리서부터 일렁이는 바다가 검은 모래 해안에 가까워지면서 그르렁댄다. 날카로운 파도 이랑을 깎아내는 바람이 우리가 앉은 식탁까지 포말을 날린다. 그렇게 부서진 바닷물 알갱이가 안개비처럼 사방으로 흩어진다.

머리 위 못 빠진 양철지붕이 깃발처럼 흔들린다. 금속성 물질이 요동치며 내는 날카로운 고음도 아련하게 흘러나오는 옛 라디오 소리 같은 것은 왜일까. 나는 그때 우주의 무중력 세상에서처럼 공중에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느낌을 받았으며 나의 움직임은 심해에서 유영하는 반투명 발광체의 부드러운 슬로우모션 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