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 95-델피니움(Lark spur, Delphinium omatum)
나무와 꽃이 있는 창 95-델피니움(Lark spur, Delphinium omatum)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4.02.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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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길을 가다가 한 무리의 꽃을 본다. 처음 보는 진한 청색의 꽃이다. 그 뭉특한 꽃모양이 대찬 여성같이 느껴지고, 한(恨)스러움이 잔뜩 묻어있는 듯 하다. 델피니움(Lark spur, Delphinium omatum)이란다. 미나리아재비속, 과라는데 여리게 노랗게 자그마니 봄에 피어 오르던 아재비를 연상하고 이 꽃을 대함은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가계(家系,lineage)처럼 꽃의 가계도 진화(進化)의 과정을 거쳐 나왔음을 인정하게 한다. 

오늘도 그 꽃이 그 작은 아파트 앞 화단에 피어 있을지, 꽃 매무새를 좀더 자세히 보아야 겠다. 그 후 홈 디포(Home Depot)에서도 판매용으로 진열된 것을 보았다. 꽃대는 쭉 빼올려 큰 편으로 직립성이다. 꽃 모양은 가운데에 작은 꽃잎이 뭉쳐져 피어 겉꽃잎과 속꽃잎으로 이루어진 겹꽃이다. 속이 진한 보라색이나 검은색 계통을 대하면 한을 품은 여인의 매무새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는 ‘제비고깔’이라는 이름으로 6종이 분포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전설에도 등장하는 꽃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던 오르토프스라는 청년이 바다에 떨어진 것을 돌고래가 구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돌고래와 친해졌는데, 어부들이 돌고래를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알고 돌고래들이 도망치게 했다. 이를 못마땅히 여겨 어부들이 이 청년을 죽여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를 안 돌고래들은 신에게 오르토프스의 영혼이 꽃에 깃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신이 이들의 우정을 가상히 여겨 영혼이 깃들게 한 꽃이 바로 델피니움이라는 것이다.

풀꽃 시인 나태주의 ‘풀꽃 1’에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기도 하겠지만 이 꽃은 야생화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다. 자세히 보아야 그 꽃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 같은 사마리아 여인 같다고 할까? 

 

사마리아 여인을 닮은 꽃~ 델피니움

골고다 언덕 위 청남색 꽃 한 송이 피었다
피 흘린 자국 위 델피니움이 피었다

십자가 피 흘리신 예수님 생전에 
물 한 모금 청했던 사마리아 여인

아, 삶은 나락과 절망 끝에서도 
피워 올려야 하는 한 떨기 꽃

그 여인, 갈망하였을까  /나무신문

 

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