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 89 - 두릅과 더덕
나무와 꽃이 있는 창 89 - 두릅과 더덕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10.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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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두릅꽃

우리 산야에서 이른봄이면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었다는 듯 싹을 내미는 나무가 있다. 두릅(Japanese Angelica Tree Aralia elata Seem)이다. 그런데 왜 한국인의 밥상에서 나물을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두릅에 왜명(倭名)의 Japanese가 붙었는지… 이곳 세미트리에서 이 영명을 발견했다. 팔월도 다 가는 어느 날 세미트리를 찾았더니 독활꽃같이 하얀 꽃들을 가지에 눈가루처럼 피웠다. 멀리서도 눈에확 띈다. 이듬해 봄에 내밀 싹이 궁금해진다. 첫 개화도 궁금해진다. 꽃을 내미는 식물은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언제 꽃을 내밀고 닫는지, 그리고 씨를 배는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두릅과 같이 밭의 산삼으로 불리는 더덕(Bonnet bellflower, Codonopsislanceolata)의 꽃을 발견한 건 운좋은 발견(Serendipity)이었다. 큰 화분에 아내가 무엇을 심어 자란 것같은데, 그 잎도 지고 겨우내 황무지가 된 화분의 흙을 빈 터에 쏟다가 희끄무레한 뿌리인듯한 네쪽을 발견하고 봄의 화분과 땅한켠에 심었다. 나팔꽃마냥 덩굴성으로 올라 받침대를 세워주었더니, 늦봄에서 여름내 가을로 갈 때까지 종 모양의 꽃을 숙여 피워낸다. 벌도 위로 난 동굴을 들어가 화분을 묻히려면 힘들 것같은 생각이 들어 그 모양이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밑에서 바라보거나 손으로 꽃 얼굴을 쳐들어 그 모양을 바라보고 찍어본다. 마치 초롱꽃같다. 꽃이 진 자리에 둥글넓적한 열매를 맺는다. 밭의 산삼이라는 더덕! 땅속이 궁금하다. 그러나저러나 월동을 해야할텐데 어떻게 해야할지 인터넷검색을 해본다. 그렇게 그야말로 못보았을 것 같은 더덕을 발견한 건 우연의 행운이었다.   

 

더덕꽃.
더덕꽃.

한해식물이 아닌 걸 확인하고 기뻤다. 자작나무 아래 땅 한켠에서 잘 월동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싹을 내밀었다. 이 덩굴식물을 보면 처음은 미미하나 끝은 장대하리라는 성경의 한 귀절이 떠오른다. 화분에 심은 것도 뿌리가 겨울의 강추위에 얼지않게  Garage에 넣었다가 해 좋은 날엔 볕 쪼이기를 해주는 것을 반복하며 갈무리해 주었더니 이 녀석도 잘 자라주어 연분홍 꽃을 피우는 찔레와 라일락 가지가 닿는 쪽으로 대를 세워 감고 이들 가지를 감싸도록 그 덩굴성을 유도해준다. 이 덩굴식물의 벋음새는 어찌나 왕성한지 덩굴을 나선형으로 감아올리며 일정한 간격으로 네잎을 가지런히 수평으로 펼치는 잎 구조인지라 하늘 향해 십자형 네 잎을 펼쳐 가는 모습이 보기가 참 좋다. 산딸나무(Dogwood)의 십자화가 아니라 십자엽(十字葉)을 보여준다.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는 그 용맹성의 덩굴머리를 줄을 따라가도록 보살펴준다. 이렇게 한 식물상태를 살피려는 사람의 마음은 새아침을 맞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어져하루 일상을 경건하고도 설레임으로 맞게 한다.   

고개를 숙인 나의 아씨~ 더덕꽃

고개 숙인 아씨
그 사연이 궁금하다

온봄, 여름, 가을이와서
고개 숙인 꽃
둥글넓적한 애기주머니

흙수저로 와서
흙수저 놓고 가신 님

고개 숙인 나의 아씨여!
내 님도 그렇게 사셨지요

한 번이라도 좋으니  
땅 아래 바라면서
종(鐘)만 울리지 말고

고개 한번만 쳐들어 보아요  /나무신문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