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기억 속 미루나무 길이 인도한 고향 같은 마을 '양동마을'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기억 속 미루나무 길이 인도한 고향 같은 마을 '양동마을'
  • 나무신문
  • 승인 2008.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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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북부지역에 있는 옛 마을
▲ 빈터만 있으며 아이들은 신나게 논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놀고 있는 아이들.

양동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담장 안에 서 있는 학교를 보았다. 시골 초등학교에는 어김없이 그런 나무가 한두 그루 씩 꼭 있었다. 옛 기억에 내가 뛰어 놀던 학교 운동장에는 그네와 시소, 정글짐과, 철봉, 자동차 고무바퀴로 만들어 놓은 이름도 용도도 분명치 않았던 놀이기구 등과 함께 운동장 한 쪽에 그림자를 드리워 더위를 식혀 주던 아름드리 나무가 있었다. 운동장에는 플라타너스가 많았고 길 가에는 미루나무가 많았다.

하루에 두 번 청주에서 버스가 들어오던 고향 신작로에 미루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뿌연 먼지 툴툴 거리며 저 먼 산굽이 돌던 버스는 어린 나에게 희망과 행복과 즐거움과 설렘의 대상이었다. 흙먼지 길을 달려와 내 앞을 지나 차부(정류장)가 있는 곳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버스를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버스를 보내고 난 마음 끝은 까닭 없이 애처로웠다.

양동마을로 가는 길에 만난 초등학교 운동장 나무 한 그루에 넋을 잃고 있었는데 일행이 다 왔다고 일러준다. 마을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양지바른 마을 안으로 우리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끼 앉은 기와집 앞마당 고목이 몸을 비틀어 집을 감싸 안았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농재 이언괄의 효심을 받들어 지은 심수정이다. 벼슬길에 오른 형을 대신해 농재는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1917년 경에 지어진 것이며 양동마을 정자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양동마을에는 이런 이름 있는 정자나 집 말고도 일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도 백여 채가 넘는다. 모두 초가와 기와를 얹은 한옥이다. 몇 개의 골짜기와 산날맹이 아래 아늑한 보금자리에 집들이 들어앉았다.

한옥 마을은 위에서 내려 봐야 제 멋을 알 수 있다. 집들이 골짜기 어느 구석에 어떤 모습으로 앉아 있는지, 옹기종기 모인 한옥이 어우러진 모습을 위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아야만 ‘마을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도 양동마을 언덕길을 오리내리다 보면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마을 곳곳을 둘러보고 언덕길을 내려오는 데 논 옆 흙길에서 아이들이 뛰어 논다. 술래는 전봇대에 이마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아이들은 술래를 향해 다가간다. 한 놀이가 끝나면 아이들은 금방 다른 놀이를 찾아 논다. 이번에는 몇몇 아이들이 마을 도랑 곁에 앉아 ‘퐁당퐁당’ 노래를 부르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뿔사! 기억 속 미루나무 신작로 길에서 아홉 살 아이 하나 걸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