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 87 - 한련화(旱蓮花, Nasturtium)
나무와 꽃이 있는 창 87 - 한련화(旱蓮花, Nasturtium)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10.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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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땅의 건조한 곳에 피는 연꽃이라고 이 이름이 붙여졌던가! 그러고 보니 작은 주홍색 이쁜 얼굴에 이파리는 동그마하니 연잎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동그마한 잎새들을 달았다. 고향 감천에서 본 작은 주황색 유등초보다는 한껏 크고, 분위기는 그 꽃과도 닮았다. 소인국(小人國)에 가면 분명 연꽃이라고 환영받을 듯하다. 이 한련화를 대한 것은 언제던가 서울역 앞 남대문 시장 입구에서 서울로(路)로 진입하는 공간의 화분대에 심겨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참 아담한 꽃이구나. 그리 키가 크지 않은데 해맑은 얼굴로써 한껏 유월 하오(下午)의 볕을 즐기며 남산을 바라보고 있던 모양이라니…

이곳 Mount Pleasant Cemetery를 향해 남쪽으로 걷다보면 오른쪽에 June Rowlands Park이 나온다. 그 곁에 가든이랄까 텃밭 아니면 꽃밭이랄까 작은 면적의 원형으로 꾸민 식물-채소, 초화류- 재배 공간인 Davisville Garden이 나온다. 우연히 지금쯤 자라는 식물들이 궁금하여 들렀다가 거기서 탄자니아 출신의 한 여성 Gardener를 만났다. 그 인연으로 그곳에서 자원봉사자(Volunteer)로 일하게 되었다. 삼각형 구조로 짜 올린 나무 화분대(Planter)의 가(邊)를 따라 그녀가 이 한련화 씨를 이른 봄 뿌린 모양이다. 씨앗 넣은 데 조그만 나무 깃처럼 꽂힌 이름표에 Nasturtium이라고 적혀있다. 물을 주고 나중에 올라온 갓 잎이 마치 자그만 연잎을 연상케 한다. 영락없는 땅위의 연잎이다. 좀 더 커서 하늘하늘한 꽃을 보여 주기를 기도해 본다.

자고나서 가 보면 청설모가 헤집은 것인지 식물 심겨진 부위에 음푹 패이곤 해서 그녀가 철사로 얽은 작은 목책(木柵)을 사와서 주위에 꽂고 위에 플라스틱 메쉬를 씌웠다.  저 어린 것이 좀 더 크면 그 메쉬를 걷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강보에 싸인 아기가 아장아장 걸을 때쯤이면 주위에 성장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치우듯이… 그날을 위해 물을 부지런히 주고 자람새를 관찰할 것이다.  

그 후, 여름 들면서 빨갛고, 노랗고, 그 중간색인 주황색으로 아담한 꽃들을 피웠다. 그 탄자니아 여성 가드너는 짐짓 그 조그만 씨앗에서 저 동그마하니 이쁜 연잎같은 이파리와 꽃들이 활짝 필 것을 예견하면서 씨를 흙속에 넣었으리라! 이제 그 주변에 심은 쇠비름(Purslane)이 무성히도 자라서 Garden을 보러 오는 사람들께 싱싱한 Salad로도 족한 것을 체험해 보라고 한 잎씩 떼어준다. 한련화도 꽃을 먹을 수 있다면서 한 잎 떼어, 먹어보라고 권한다. 팬지 꽃잎을 먹을 수 있듯이 말려 차(茶)로 쓰이는 것 이외에 식용(食用)할 수 있음은 꽃이 인간에게 베푸는 보시(布施)이지 않으랴! 그리고 지금 팔월 칠리고추(Chili Pepper)도 우뚝하니 잘 커 가고 있다. 저 고추, 우리 청양고추의 매운 맛을 낼까? 아니면 파프리카나 피망 같은 맛을 낼까?  

여하튼 이 가든에서 한 여성 가드너를 만나 집에서 스티로폼 박스에서 가꾼 들깨(Perilla) 몇 잎을 건네며, 보고 들으며 배우는 꽃 지식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자그마한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한련화 꽃을 관찰하니 꽃잎 뒤에 밑을 향해 거(距)를 달았다. 이 모습은 작년에 우리 집 앞뜰에도 심어서 서리내린 가을까지 꽃을 본 아프리카/뉴기니아 봉선화(Impatiens)가 5장 꽃잎 뒤 갸륵히 매단 거와도 닮았다. 이 거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알고 싶어진다. 좀 더 관찰해야 할 일이지만 아마도 꽃잎 진 뒤 열매를 맺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오늘도 한련화를 보러 간다. 보러 가는 길에 그물대(Mesh Wire)를 봄에 설치해 주어 노란 꽃 밑 또한 진 자리에 고향 조랑박처럼 커서 달려있을 여주(Indian bitter melon)도 볼 것이다. 그 여주 볼그레 익을 때쯤 고향 텃밭에서 당뇨에 좋다며 무성히도 키워내시던 아버님의 여주를 떠올릴 것이다. 

 

한련화 필 무렵

서울路 어디쯤
그 고가 정원 어디쯤
한련화는 피고 있을까

청계천 나와
올라서면
환히 웃어주던 너

지금도 남산 보며
피고 있을까

그때 너를 보던
한 사내를 기억이나 할까 
 /나무신문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