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 82 - 키 큰 개암나무 아래에서~ Turkish filbert
나무와 꽃이 있는 창 82 - 키 큰 개암나무 아래에서~ Turkish filbert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06.29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사진 | 서진석 박사·시인

터키 개암나무(Turkish Filbert, Corylus Colurna, Betulaceae)
사람의 일생을 보려면 유년, 청년, 장년, 노년의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초목(草木)은 그 모습을 달리 한다. 가만히 계절 속의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한 송이의 꽃, 한 그루의 나무라도 사람처럼 제 본모습을 보이려는 것이 갸륵하고 기특할 뿐이다. 내가 이 나무를 대한 것도 이런 연유(緣由)를 뜯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세상이 좋아져서, 꽃 이름, 나무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지는 모습을 찾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옛날에는 스승이 훈장이었고, 현대에선 스승이 선생이라면, 그에 더해 말없는 스승이 ‘인터넷’인 셈이다. 이 덕택으로 개암이 우리가 Starbucks나 Tim hortons 등 커피숍에서 즐겨 마시는 커피의 향(香)을 제공하는 Hazelnut이 바로 개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학교 뒷산에 가시를 두른 탱자나무가 있었고 가을이면 개불알만한 노란 탱자가 곱게 열리곤 했다. 그 옆에 고욤나무 한 그루가 있어, 쬐그맣게 동그마니 열리던, 작은 감 비슷한 고욤을 따 먹곤 했었다. 그리고, 할머니 묘소를 가는 산 발치에서 잎이 타원형으로 넓은 편인 키 낮은 나무에서 풋밤 같은 열매를 단 개암나무를 대했던 기억에 접한다. 말하자면 개암과 고욤을 착각하면서 구분 못하고 동일시하던 때가 있었으니 어쩌겠는가... 

내가 가는 세미트리에 어릴 때 보던 관목이 아닌 교목으로 선 이 개암나무(Turkish Filbert, Corylus Colurna, Betulaceae)가 서너 그루 있어 그야말로 4계절을 거치는 본 모습을 잘 알 수 있어 좋다. 8월에 들른 나무 가지에 빼꼼히 드러낸 배를 보이며 둥그런 포(袍)에 싸인 개암 열매가 정겹다. 도토리 알처럼 익어 가는 열매! 사람도 자주 보면 정이 들 듯 어릴 때 본 ‘개암’의 추억으로 바라보니 더 정겨움을 선사한다. 

 

키 큰 개암나무 아래에서~ Turkish filbert

안 보던 꽃을 고개를 숙여 쳐다보듯
안 보던 나무를 휘어다 본다

코흘리개 시절 가슴팍 이름표를 보듯 
줄기 살갗 버즘 피우고 
개암 열매 감싸개를 둘렀다.

꿀밤인가 해서 보니 아니고
알밤인가 해서 보아도 아니고

어릴 적 할매 묏 잔등 찾아가던 숲 어귀
키 낮은 나무에 매어 달렸던 너
정작 개암 열매를 달았구나

지금은 땅으로 길게 늘어뜨린 것이
자작나무 씨앗도 아니고
오리나무 씨앗도 아닌 것이
연한 살구색으로 본 모습을 보여준다

숙연히 떨군 그의 잎 새 순이  
탄생할 잎의 자태를 상상하게 할 뿐 
그래서 잎 피고 꽃 다는 봄 
하냥 기다려지는가 보다
  /나무신문

 

글·사진 |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