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의 문화칼럼/방랑과 은둔의 천재가 그립다
김도언의 문화칼럼/방랑과 은둔의 천재가 그립다
  • 나무신문
  • 승인 2008.04.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전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와 그의 시대를 공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일이다. 완당과 허균과 퇴계의 평전을 읽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중의 하나는 그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와 관계를 맺는 고유한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평전의 주인공이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물과 그 인물의 시대가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김시습은 우리에겐 몇몇 단편적인 에피소드로만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생후 여덟 달 만에 한자를 읽었고 세종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비단을 허리춤에 묶고 나왔다는 이야기나 자신보다 연장자인 조정 대신들에게 면박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김시습이 비범한 천재성과 광기를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기표로서 소박하게 존재할 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김시습이라는 인물이 가진 복합성을 인정한다. 김시습을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시를 짓고 글을 썼던 문인으로서, 유가 성리학과 정통 유가사관의 주제를 저술로 남긴 참여 지향의 선동가로서, 불교의 철학적 사유를 유교의 이상과 연결시키려고 고심했던 철학자로서, 몸과 생명을 중시하여 수련 도교를 실천한 혁신적 사상가로서,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동정한 인도주의자로서, 국토 산하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역사미를 발견했던 여행가로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김시습의 삶에서 일별해 취재할 수 있는 두 가지 주제어가 있다면 그것은 ‘방랑’과 ‘은둔’이다. 저자는 그가 방랑을 선택한 이유로 굳은 절의와 신념을 든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동문수학한 유학자들이 그것에 동조한 사실에서 김시습은 깊은 분노를 느끼고 절망했던 것.

세조의 왕위 찬탈은 김시습이 신봉하고 있던 유가적 이상과 가치 체계를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폭거였다. 자신이 공부하고 있던 책을 불살라 버리고 스스로 똥통에 빠져버린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생육신의 명부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방랑을 시작한다. 전 생애에 걸친 긴 방랑의 시작이었다. 총선을 앞둔 요즘,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김시습의 허랑방탕한 무욕의 생활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