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77 - 민초(民草)를 닮은 민들레
나무와 꽃이 있는 창77 - 민초(民草)를 닮은 민들레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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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서양민들레(Taraxacumofficinale).
서양민들레(Taraxacumofficinale).

민들레(蒲公英, Dandelion)
겨울 눈이 다 녹기도 전에 이 가녀리면서도 강인한 노란 생명력은 땅을 박차고 흙을 헤집고 위로 방긋이 솟아오른다. 아내에게 늘 잡초라고 지목받아 오던 꽃, 그러나 혹한을 이겨내고 땅 속에서 뿌리가 살아 푸른 잔디와 조화를 이루며 노란 꽃의 풍경을 연출하는 꽃이라니… 막상 뽑아서는 그냥 버리기 아까워 무침으로 싸부름한 봄맛을 돋구어 주는 사랑내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봄에서 여름 한철 잔디 위에서 마치 포복하듯이 피어나는 민들레는 노란 동정(童貞)으로 생을 시작해서 작은 눈송이 같은 무수한 홀씨를 머리에 이고 생을 마감한다. 그 기간이 짧기에 안쓰럽기도 하다. 질긴 삶을 이루어 내기 위해 길게 뿌리를 내려 한설에도 견뎌내어 이른 봄 노랗게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나를 잡초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들은 짓밟혀도 소리없이 이겨내는 미덕(美德) 한 구석이라도 지녔느냐? 바람에 불리워 떠도는 유랑자의 삶을 살더라도 언젠가 정착하여 꽃을 피우고 마는 결기(決氣)라도 지녔느냐? 오늘도 곁에 가서 고개 숙여 바라보노라면 묻는 듯하다.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되어’ 노래를 나지막히 불러본다. 또, 그에 맞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시를 읊보려 본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 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 ‘민들레의 영토’가 있다. 어디 민들레에게 영토가 있으랴? 제 어디든 날아가서 발붙이는 곳이 영토라면 영토일까? 중세 봉건시대의 귀족의 영지(領地)와는 사뭇 다른 한 뼘 땅만 그의 것이지 않는가. 그에게는 영토가 없다. 영토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민초(民草)를 닮은 민들레

언제 내게로왔니? 

반가운 손님
꽃 손님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얀 머리칼 날릴 때까지 

목이 마르지 않니?
힘 들지 않니?

천상(天上) 모성(母性)
동정녀(童貞女) 마리아를 닮은

노오란 미소

늘 보아도 만나도
반가운 손님
꽃 손님 
   /나무신문

 

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