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76 - 미국미역취를 위한 세레나데
나무와 꽃이 있는 창76 - 미국미역취를 위한 세레나데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03.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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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미국미역취(Giant-goldenrod)
에드워드 가든(Edwards Gardens)으로 가는 길엔 팔월도 다 가는 날 미국미역취 천지였다. 봄에는 노란 민들레로 숙여보게 하더니만, 여름날엔 볕에 익은 듯 노랗게 겅중한 미국미역취가 늘려 피어 있었다. 좌우편에 개천이 흘러내리고 이어지는 풀섶, 수풀에는 노란 미역취가 자신을 보아 달라는 듯 한껏 피어 있었다. 노란색이 연출하는 황홀함은 비길 데가 없었다. 무수하고 자잘한 꽃잎들- 수수꽃 같이 숙인 모습으로 어쩌면 수수꽃다리처럼 뭉쳐 무리지어 핀 꽃-을 보고 있노라면 참말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미역 냄새가 난다고 하여 미역취라는데 그 냄새보다도 수수한 잠뱅이 냄새가 묻어있는 듯하다. 

마치 고향 산야에 피어나던 황순원 ‘소나기’의 윤초시 증손녀에게 남자아이가 건네준 노란 마타리를 보는 듯 정겨웁기만 하다. 어찌 저렇게 번식력이 좋아서 아무 데나 가리지 않고 뿌리내려 피웠단 말인가! 노란색은 추억이라니, 길 위에 무수히 핀 것을 보며 가노라니 고향 길로 빠져드는 여정인 것 같고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그 노란 꽃더미 속을 헤집는 벌들이라니… 벌은 이 꽃의 무엇이 좋아 날아드는 것일까? 황홀한 노란 색, 향(香), 그 둘다… 분명 그들은 지금 청춘을 한껏 누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하던가! 그래서 어디선지도 모르는 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지닌 꽃임이 역력하다. 한철 땅에 뿌리를 내려 수수하니 노란 삶의 꽃을 피워내는 그 혼(魂) 앞에서 자못 숙연해진다.  

이곳 Mount Pleasant Village의 토론토시에 부속되어 있는 한 조그만 텃밭-가든이라고 하기엔 작은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탄자니아 출신의 Gardener를 도와 낙엽과 Manure로 부숙된 흙을 섞은 곳에 오월 중순 어느 날 이 꽃 모종을 심었다. 원형으로 설계된 터라 원 테두리를 따라 듬성듬성 심은 이 꽃들이 살아 노란 꽃을 피우면 뭇 벌들이 날아드는 장관을 연출하리라! 

마침 원고를 수정하며 쓰는 날이 부부의 날(5월21일)인지라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는 아니더라도 한 송이 장미를 건네고 싶다. 언젠가는 장미, 해당화, 찔레를 모델로 글을 써 보려한다. 생떽쥐베리의어린왕자가 아끼던 한 송이 장미를… 아니더라도 이 찬연한 여름날 눈부시게 핀 미역취는 당신이 되고, 나는 벌이 되어 당신께 날아드는 연극 무대에 우리가 서는 날은… 

미국미역취를 위한 세레나데 

벌이 날아온 꽃에 
노란 별이 내려 앉았다

하늘에도 용궁이 있어
밤새 별 천사가 땅에 내려왔는가

벌이 헤집고 간 꽃 더미
해조(海潮) 내음이 난다

하늘의 천사는 
노란 꿈을 꾸는 성녀(聖女)

하늘의 별이 내려왔다  /나무신문

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