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웁살라 린네 식물원③
스웨덴 웁살라 린네 식물원③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3.0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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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94- 글·사진 권주혁 박사
도로에서 본 린네 박물관.
도로에서 본 린네 박물관.

린네는 1741년에 웁살라 대학 약학대학(당시에는 식물의 약용연구가 중요하였으므로) 학장에 임명되었고 동시에 1655년에 웁살라 시내에 처음 세워진 식물원의 관리책임도 맡았다. 린네가 세상을 떠난 뒤 식물원은 폐허가 되었으나 1917년에 다시 복원되었고 사람들은 오늘날  이 식물원을  ‘린네 식물원’ 또는 ‘린네 정원’이라고 부른다. 이 식물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회에 걸쳐서 자세하게 설명하였는바 이번 회에는 이 식물원 안에 있는 린네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린네 식물원 정문을 들어가면 오른편에 밝은 베이지색 2층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이 오늘날 린네 박물관(Linnemuseet)인데 일부 현지인들은 식물집(Botanical Hous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일 ‘린네 식물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원은 1655년에  웁살라 대학의 약학대학 교수인 루드벡(Olaus Rudbeck)이 약용식물 재배를 위해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학은 식물원 옆에 1693년에 집을 만들어 루브벡에게 관사로 제공하였다. 그 후 웁살라 대학교 음대 교수들도 이 집에 살았고 린네는 1743년부터 1778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이 집이 오늘날 ‘린네 박물관’이 된 것이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꽃을 유심히 관찰하는 린네의 동상과 필자. 린네 박물관 앞 마당.
오른손에 들고 있는 꽃을 유심히 관찰하는 린네의 동상과 필자. 린네 박물관 앞 마당.

필자가 청소년 시절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린네가 살던 집에 오게 되다니... 마치 가정집 출입문 같은 린네 박물관의 입구를 들어 갈 때 필자는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제 드디어 린네의 인생이 뿜어내는 아로마를 직접 코로 맡을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식물원을 내려 보는 이층의 작은 방에서 린네는 동식물학의 체계를 집중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므로 이 방에서 그의 방대한 식물학 체계 연구결과와 그의 식물학 관련한 철학 사상이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위대한 업적의 뒤에는 그를 존경하여 따른 제자들과 그를 도와준 외국 학자들의 기여도 있다. 린네는 이 집에서 세계의 여러 학자들과 편지를 통해 교류를 함으로써 영국, 네덜란드, 남아프리카 공화국(당시 네덜란드 식민지), 인도(당시 영국 식민지), 미국(당시 영국 식민지) 등지의 식물학자들이 상자에 넣어 보내준 식물표본, 씨앗 등을 받아 연구하여 그가 만든 식물학 체계의 학명을 붙였다. 린네는 생전에 식물 7700개와 동물 4400개 이상을 7단계의 분류체계를 통해 분류하고 이름 지었다. 인간을 동식물 분류체계법에 따라서 속(屬), 종(種)명을 Homo sapiens라고 명명한 것도 린네이다.

박물관 안에는 그의 과학연구업적, 저서, 논문, 식물 표본 등은 물론이고 그가 사용하던 책상, 가구 등 일상용품도 전시되어 있으므로 시계바늘을 3백년 전으로 돌려 그의 아로마를 실컷 냄새 맡을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린네가 평생 수집해 놓은 수많은 동식물 표본과 그가 사용하던 안경, 연필 등이 이곳에 없고 거의 대부분이 영국 런던에 있는 ‘린네 학회’에 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자연과학 연구를 중히 여긴 결과 19세기에 영국 영토에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었다. 즉, 린네 당시에도 고국인 스웨덴보다 영국인들이 린네를 훨씬 더 존경하였는데 그러한 상황은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린네의 공적을 모르다가 1세기 전부터 린네의 공적을 제대로 알게 된 스웨덴인들 이지만 아직도 영국인보다 린네를 존경하는 강도가 크지 않다(이 점에 대해서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린네가 만든 학명은 250년이 지난 오늘날도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업적의 밑에는 그의 엄청난 자연사랑이 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보이는 식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체계를 밝히려고 평생을 보냈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집안에는 침실, 거실, 식당, 부엌 등 이외에 강의실도 있다. 린네는 학교 수업시간에 다 못한 강의 내용을 집에서도 한 것이다. 당시 웁살라 대학 교수의 월급은 상당이 낮았으므로 이곳에 와서 린네의 특별 과외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강의료를 지불하였다. 학생들은 스웨덴뿐만 아니고 유럽 각국에서 왔다. 린네는 언변도 좋았는지 그의 강의는 인기가 높아 그가 학교 강의실에서 강의를 할 때는 학생들이 너무 몰려와서 강단까지 올라와 강의를 들었을 정도였다. 린네는 여름이 되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학생들을 데리고 웁살라 인근 등에서 야외수업을 하였다. 오전 7시에 출발하여 오후 9시에 돌아오는 이 수업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가능한 많은 동식물을 만나 조사하고 토론하여 결과를 유출하는 것이었다.  

린네의 과학연구 업적이 전시된 린네 박물관 내부.
린네의 과학연구 업적이 전시된 린네 박물관 내부.

웁살라는 ‘린네의 도시’라고 말해도 될 만큼 시내에는 린네에 대한 기념물이 많다. 시내 중심가에는 ‘린네 카페(Linne Cafe)'도 있는데 위대한 과학자의 이름에 걸맞게 분위기가 고급이고 품위가 있다. 필자는 린네 박물관을 떠나면서 린네 식물원의 벌들이 만든 꿀 한 병을 기념으로 구입하였고 이 병은 필자가 글을 쓰는 책상 위의 컴퓨터 앞에 놓아두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따라 이 병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나무신문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6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전북대학교 농업생명 과학대학 외래교수(4년),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20권. 현재 저술, 강연 및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