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림과학 뿌리가 조선총독부라는 산림청
우리나라 산림과학 뿌리가 조선총독부라는 산림청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02.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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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현 청장, 묵묵부답…산림과학원, 수산과학원도 그랬는데 ‘왜 우리만?’

정진석 “뜻깊은 100주년…산림녹화 기적 이어가야”…김진표 “일제는 수탈의 역사”

산림청이 대한민국 산림과학의 뿌리를 조선총독부에 두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근현대 산림과학연구 100주년을 맞아 ‘국민이 누리는 숲’으로의 연구 시대”를 열었다고 천명한 바 있다.

또 국립산림과학원 역시 1월4일 ‘2023 국토녹화 50주년, 산림·임업 전망’ 대회 개최를 알리며 “특히 올해는 국토녹화 50주년이자, 산림과학연구 100년 이후의 첫해로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뜻깊은 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해 봄 제주와 진주 등에서 ‘산림과학연구 100주년’을 기념한 식목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해를 넘기며 잊혀져가던 우리나라 ‘산림과학연구 100주년’이라는 말이 남성현 산림청장의 첫 신년사에 의해 되살아나면서, 과연 조선총독부를 우리나라 산림과학 연구의 뿌리로 삼아도 되느냐는 논란이 조심스럽게 일기 시작한 것.

공교롭게도 이러한 논란이 번지기 시작한 이후 산림과학원은 ‘산림·임업 전망’ 대회를 다시 알리는 1월12일 보도자료에서 “올해는 국토녹화 50주년이자, 산림과학연구 100년 이후의 첫해”라는 기존 문구 대신 “올해는 국토녹화 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를 사용하며 ‘산림과학연구 100년’이라는 말을 지워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박현 산림과학원장은 18일 전망대회를 개회하면서 “지난해 저희 산림과학원은 홍릉터에서 산림과학을 시작한지 100년”을 맞이했다며 ‘산림과학연구 100주년’을 되살려 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를 이어받았다. 정 위원장은 축사에서 “올해가 국토녹화 50주년이자 산림과학연구 100년을 기념하는 해이기에 오늘 이 행사가 더욱 뜻깊은 것 같다”면서 “우리는 한국전쟁 등으로 망가진 전국의 민둥산을 푸른 산으로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기적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축사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축사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반면 김진표 국회의장은 일제시대를 수탈의 역사임을 분명히 했다. 김 의장은 역시 축사에서 “우리는 일제의 수탈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민둥산을 푸른 산으로 바꾸었다”며 “산림은 자연이자 자원이다”며 앞으로의 경제적 가치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축사하는 김진표 국회의장.
축사하는 김진표 국회의장.

자랑스러운 100년과 반성하는 100년의 차이
나무신문이 논란을 인지하고 산림청장에게 대변인실을 통해 관련한 첫 질의서를 보낸 것은 1월13일. 이후 16일 질의서를 다시 보냈고, 27일 대변인실과 통화까지 시도한 후인 2월1일에야 답변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산림청 대변인실을 통해 받은 답변서는 남성현 산림청장이 아니라 국립산림과학원 명의로 돼 있었다. 산림청장에 대한 질의에 대한 답변 역시 빠져 있었다.

나무신문이 남성현 산림청장에게 보낸 질의서 전문은 아래와 같다.

사실관계
1. 남성현 청장께서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근현대 산림과학연구 100주년을 맞아 ‘국민이 누리는 숲’으로의 연구 시대도 열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2. 이는 국립산림과학원 연혁에서 밝히고 있는 ‘1922년 임업시험장 창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 듯합니다.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해 이를 기념한 식목행사 등을 개최한 바도 있습니다.

3. 올해 벽두에 청장께서는 신년사를 통해 이를 다시 한 번 위와 같이 강조하시고,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오는 1월18일 개최되는 ‘2023 국토녹화 50주년, 산림·임업 전망’ 대회의 중요성을 알리며 “특히 올해는 국토녹화 50주년이자, 산림과학연구 100년 이후의 첫해로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뜻깊은 해이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제제기 및 질의.
① ‘임업시험장’이 창설된 1920년은 일제강점기입니다. 우리나라 산림과학연구의 시작이 조선총독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인지 묻습니다.

② 일제 주도로 우리 땅에서 진행된 ‘산림과학연구’가 있었다면, 그것은 ‘패망 전까지 조선 땅에서도 산림과학연구를 진행했다’ 정도로 기술될 ‘일본의 산림과학연구’ 역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③ 참고로 우리 경찰의 연혁을 살펴보면, 해방 이후인 1945년 10월21일 “미군정청에 경무국을, 각도에 경찰부 창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비록 노덕술은 일제에 이어 대한민국에서도 경찰로 재직했지만, 이를 우리 경찰의 뿌리로 볼 수는 없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④ 이는 일제 치하의 행정이나 과학연구 등은 식민지배를 위한 수단이지,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큰 틀에서의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우리 경찰의 역사와 같은 예는 다른 기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⑤ 그런데 산림청에서는 우리나라 산림과학연구의 뿌리를 일제 강점기 ‘임업시험장 창설’에 두고 있고, 청장께서도 이처럼 강조하시는 건 일제의 식민지배가 우리나라 발전을 위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묻습니다.

⑥ 국립산림과학원은 이미 지난 2013년 6월에 “경기도 포천 광릉시험림은 1913년 우리나라 근대 임업연구가 시작된 곳이다. … 지금까지 이어져 올해 100주년을 맞는다”며 이를 기념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해 12월 ‘광릉시험림 조성 100주년을 기념’ 산림공학 종합실험동 준공식도 있었습니다.

⑦ 2013년 역시 일제 강점기로, ‘광릉시험림’은 1922년 창설된 ‘임업시험장’의 전신 정도로 보입니다. 

⑧ 2013년 100주년으로 기념한 ‘광릉시험림’과 2022년 100주년으로 기념된 ‘임업시험장’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요.

이에 대한 국립산림과학원의 답변은 한마디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사진1,2 참조>

[사진 1, 2] 산림청 대변인실로부터 받은 국립산림과학원 답변서. 남성현 산림청장에게 한 질의는 빠져 있다. 또 어느 부서 누가 작성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진 1] 산림청 대변인실로부터 받은 국립산림과학원 답변서. 남성현 산림청장에게 한 질의는 빠져 있다. 또 어느 부서 누가 작성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진 1, 2] 산림청 대변인실로부터 받은 국립산림과학원 답변서. 남성현 산림청장에게 한 질의는 빠져 있다. 또 어느 부서 누가 작성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진 2] 산림청 대변인실로부터 받은 국립산림과학원 답변서. 남성현 산림청장에게 한 질의는 빠져 있다. 또 어느 부서 누가 작성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답변은 “국립산림과학원은 1949년 농림부 산하 중앙임업시험장직제 제정을 기점으로 해 올해 개원 74주년을 맞이하며, 기관 설립 및 개원에 관한 사항과 ‘산림과학연구’의 시작은 분리해 바라보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2022년 8월에 추진한 행사 명칭을 ‘국립산림과학원 100주년’이 아니라 ‘산림과학연구 100년’이라고 했다. ‘산림과학연구 100년’은 1922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홍릉터에서 근대적 산림과학연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장소적 연결성과 당시 시험림에서 수행된 연구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임업의 장기성을 반영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립수산과학원도 지난 21년 ‘근현대 수산과학연구 100년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다’라는 얘기다.

과연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개원과 ‘산림과학연구의 시작’을 분리해 바라보고 있을까. 산림과학원 홈페이지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과학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산림과학원 ‘연혁’을 보면, 시작점을 ‘1922.08 임업시험장 창설’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립산림과학원의 시작을 조선총독부 창설 임업시험장으로 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립산림과학원에 올라와 있는 산림과학원 연혁.
국립산림과학원에 올라와 있는 산림과학원 연혁.

앞서 산림과학원이 예로 든 국립수산과학원은 ‘주요연혁’과 ‘정부수립 이전 수산연구’로 구분해 연혁을 밝히는 점도 주목된다. 

수산과학원 주요연혁은 당연히 1949년 4월 상공부 중앙수산시험장에서 수사연구원의 시작점을 찾고 있다. 다만 ‘정부수립 이전 수산연구’ 항목을 따로 두어서 1921년 5월 수산시험장 창설을 알리고 있다.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100년’이 아니라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실제로 당시 최완현 국립수산과학원장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일제 자원수탈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을 우리나라 수산연구의 출발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내부적으로도 깊은 고민과 많은 논의가 있었다”면서 “지난날의 아픈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100년 동안 축적된 성과를 토대로 우리 수산업·어촌이 재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근현대 수산과학연구 100년을 기념하기로 했다”다고 양해를 구했다.

10년이 지나도 1년이 된 듯한 달콤한 맛?
산림과학원은 이러한 양해나 반성도 없어 보인다. 일제 주도로 우리 땅에서 진행된 ‘산림과학연구’가 있었다면 ‘패망 전까지 조선 땅에서도 산림과학연구를 진행했다’ 정도로 기술될 ‘일본의 산림과학연구’ 역사가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밝히라’고 오히려 되받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원은 그러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수행된 임업시험장 연구의 대상이 한반도 산림과 목재, 임업이라는 측면에서 연구 결과는 한반도 산림과 임업에 영향을 주었다”면서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이루어진 모든 연구를 단순히 일본의 산림과학연구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대표적인 친일사관인 ‘식민지 근대화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식민지 시기 일제에 의해 경제가 성장하고 근대화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게 ‘식민지 근대화론’의 요체다.

아울러 “1913년 설치된 광릉묘포장은 양묘와 식재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 조성한 시험지”이며 “임업시험장은 임업경영을 위해 필요한 조사연구와 임업시험을 목적으로 1922년에 설립된 연구기관”이어서 ‘2013년의 100주년’과 ‘지금의 100주년’은 다르다는 답변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우선 양묘와 식재시험과 임업시험을 굳이 구분해야 하는 이유도 석연치 않지만, 현직 대학교수가 발굴해 밝히고 있는 사료 또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발굴한 1913년 9월19일 매일신보 기사에는 국유광릉상림 내에 ‘임업시험장’을 설치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3 참조>

[사진 3] 현직 대학교수가 발굴해서 밝힌 1913년 매일신보 기사. 이때부터 이미 ‘임엄시험장’이 언급되고 있다.
[사진 3] 현직 대학교수가 발굴해서 밝힌 1913년 매일신보 기사. 이때부터 이미 ‘임엄시험장’이 언급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대개는 역사를 늘려 잡으려 하는데…, (매일신보) 기사대로라면 임업연구의 시작이 1922년이 아니라 1913년이라는 얘기다 된다”면서 “근대적 의미에서의 임업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13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3년 ‘자랑스러운 100주년’이라는 환각에 취한 산림청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달콤한 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나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