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의 문화칼럼/자본의 세 가지 성격
김도언의 문화칼럼/자본의 세 가지 성격
  • 나무신문
  • 승인 2008.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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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일상적 조건으로서 모든 체제의 에피세트를 구성해버린 현대 사회에서 자본만큼 명료한 지배력을 가진 권력은 없는 듯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본은 보통 재화를 뜻하는 경제적 자본이지만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자본에는 이 외에도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있다.

경제적 자본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재화, 돈이 가진 위력을 뜻한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물리적 영향력과 힘이 바로 경제적 자본인 것이다. 경제적 자본은 우선적으로 삶의 물리적 토대를 풍요롭게 구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바탕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먹지 않고서야 살 수 없는 게 인간일 테니 말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쉽게 말하면 사회적인 연관을 통해 형성되어서 실제적인 힘으로 운위되는 인맥을 뜻한다. 조직적으로 맺어진 혈연이나 지연, 학연이나 직장연이 여기에 속한다. 사회의 개인들은 이와 같은 집단적 공조와 연대를 도모하면서 보다 수월하게 개인적 이익을 확보하고자 한다.

문화적 자본은 앞에서 얘기한 두 가지 자본에 비해서는 비계량적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화적인 각성이나 철학에 기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어떤 부부가 아이에게 도서관이나 서점, 박물관, 갤러리 등을 자주 견학시켜 문화적 체험을 축적하게 한 결과,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설계하고 꾸려갈 수 있다면, 그 부부는 문화적 자본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문화적 자본의 속성을 들어 세 가지 자본 중, 문화적 자본이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민주적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문화적 자본 역시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확보한 집이 그렇지 못한 집보다 문화적 자본에 대한 정보를 훨씬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가난하더라도 집에 피카소나 세잔의 모사화 하나쯤은 걸어두자. 그것은 문화적 자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