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업계 300억 세금폭탄 철회? 성실 납세자 대책은??
마루업계 300억 세금폭탄 철회? 성실 납세자 대책은??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02.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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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공장 같은 제품 관세가 누구는 5% 누구는 8%…관세 철회되면 납부된 세금도 돌려줘야

- ‘마이너스 견적’이 난무하는 업계 출혈경쟁이 근본원인…제값 받는 풍토 마련하는 계기 돼야
인천의 한 항구에 입항한 합판 벌크 운반선.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 나무신문 D/B.
인천의 한 항구에 입항한 합판 벌크 운반선.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 나무신문 D/B.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는 듯하던 마루제조업계와 과세당국의 줄다리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정작 성실 납세자들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것. 또 문제의 핵심은 과세가 아니라 업계에 만연한 출혈경쟁에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3년여를 끌어오고 있는 인천세관과 마루 제조업체들과의 과세 논쟁이 올해 상반기 중 결론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낙관론이 또 다른 비관론을 만드는 진실게임
문제의 발단은 한아세안FTA 발효에 따라 마루 제조용 합판이 어떤 것은 5%(협정과세), 또 어떤 것은 8~10%(일반과세) 관세가 적용되면서부터다. 어떤 나무를 이용해 합판을 만들었느냐가 일반과세와 협정과세를 나누는 요인인데, ‘메란티 다운 르바루’와 ‘메란티 바카우’가 동일 수종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싸움이다. ‘동일 수종’이면 일반과세 ‘다른 수종’이면 협정과세 대상이다.

과세당국은 그동안 일부 마루업체에서 ‘다른 수종’이라고 신고해 5%의 관세만 낸 제품을 조사해 보니 ‘동일 수종’이라며,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을 납부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그 금액이 약 3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전망은 과세가 철회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결국 납부해야 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편 수종에 따라 과세의 크기를 다르게 한 것은 열대림 보호 등이 큰 이유다.

프레임에서 밀려난 성실 납세자들의 목소리
‘낙관론’이 또 다른 ‘비관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동안 ‘동일 수종’으로 신고해 8% 관세를 성실히 납부하고 있는 제조업체들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수종’ 5% 관세를 내다가 인천세관의 문제제기 이후 ‘동일 수종’으로 신고해 8% 관세를 낸 업체들도 있다.

때문에 과세가 철회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현실화될 경우 이들 성실 납세자들에 대한 구제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들 성실 납세자들이 구제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또 다른 비관론의 시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과세당국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해서 8% 관세를 내 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하지만 이 과세 논쟁이 몇 년 동안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처럼 과세당국의 판단에 따라 관세를 납부한 업체의 입장은 반영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는 또 “관세사에게 문의해 본 결과, 300억 과세가 철회된다고 해도 우리처럼 이미 8%로 신고해 납부한 업체들이 차액을 돌려받기는 힘들다고 들었다”며 “신고한 HS코드가 달라서라는데, 같은 물건을 수입해 놓고 누구는 8%를 내고 누구는 5%를 낸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우리도 행정소송을 해야 하는 지 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의 한 항구에 입항한 합판 벌크 운반선 내부.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 나무신문 D/B.
인천의 한 항구에 입항한 합판 벌크 운반선 내부.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 나무신문 D/B.

시장을 지배하는 관세 3%의 절대적 위력
도대체 문제의 이 ‘합판’은 얼마나 같은 물건일까. 

“같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면서, 심지어는 같은 배로 한국에 수입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증언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마루 제조용 합판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인도네시아 합판 제조업체는 에르나, 수마린도, 시나르 위자야, 바시리, 위자야 등 다섯 개 사가 대표적이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가 에르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합판 대부분도 에르나가 생산한 제품이다.

그런데 한국 마루 제조업체가 개별적으로 컨테이너로 운송해 수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벌크선으로 들여오는 일도 많다. 벌크선 수입은 한 업체가 그 물량을 모두 감당키 어렵기 때문에 여러 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때문에 ‘같은 공장에서 생산해서 같은 배로 수입된 제품이지만, 어떤 사람은 5% 어떤 사람은 8%의 관세를 냈다’는 얘기가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영세?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큰 기업도 ‘300억 클럽’
관세 3%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절대적”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동일 수종’ 8% 관세를 내고 있다는 업체 관계자는 “관세 3%는 절대적이라고 봐야 한다. 마루시장이 워낙 마진이 박하고, 특히 특판(아파트 등 대형시장) 시장은 마이너스 견적도 난무하는 상황에서, 관세 3% 차이는 거의 넘어설 수 없는 수준의 장벽이라고 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 마루 제조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마루제조에 투입되는 원부자재 가격에서 합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50% 정도다. 

‘마이너스 견적’이라는 게 과장이나 수식이 아니라는 증언도 있다.

또 다른 제조업체 관계자는 “마루 제조업체 대표 중에는 ‘이익이 나든 안 나든 공장은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 있다”면서 “‘마이너스 견적’을 넣는다는 게 엄살이나 과장이 아닌 게 현재 우리나라 마루업계의 현실이다. 이런 시장에서 관세 3%를 적게 낸다는 건 수주경쟁에서 그만큼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고 전했다.

마진 없는 출혈경쟁이 근본적인 원인
300억 세금폭탄이 터지면 가뜩이나 영세한 업계가 견디지 못 할 것이라는 진단에도 청진기를 다시 한 번 대봐야 한다는 목소리다. 

합판 관세 3% 덜 내서 생긴 세금이 300억이면, 그 품목 수입가만 1조원이라는 계산이다. 합판이 원부자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면, 원부자재 가격만 2조다. 아울러 관세 8%를 냈거나 아예 다른 합판을 수입해 마루를 제조한 업체까지 감안하면 쉽게 ‘영세한 업계’라고 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큰 기업도 ‘300억 그룹’에 속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업체가 안 낸 세금이 300억이면 그것만 1조원이다. 다른 원부자재를 포함한 완제품 가격을 생각하면 수 조원 시장이다”면서 “‘영세한 업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이너스 견적’까지 나오는 출혈경쟁이 이번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관세 3% 덜 내서 생긴 가격경쟁력이라고 해봐야 고작 1% 내외인데, 이 차이가 수주를 하느냐 못 하느냐를 가르는 절대적인 분수령이 된다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업계가 출혈경쟁을 멈추고 제값 받는 풍토를 만들지 않는다면 이번 일은 언제든지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서 그는 “300억 과세가 철회되더라도 성실히 8% 관세를 납부한 기업들에 대한 보상 대책이 분명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