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 72 - 나의 나팔꽃
나무와 꽃이 있는 창 72 - 나의 나팔꽃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3.01.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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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나팔꽃(Morning Glory)
고향의 큰 물줄기인 감천(甘川)가는 유월이면 노란 금계국이 낮게 피고, 바알발 감고 올라간 나팔꽃이 피곤했다. 덩굴식물 나팔꽃! 그 색조가 아이가 물에 젖어 입술이 파래진 듯도 하고, 한(恨) 많은 조선 시대 여인네의 파르란 색조와도 닮아 눈을 한번 주고는 갔다. 그래도 꽃 꼬투리를 열고 닫는 그 모습은 메꽃과 다른 분위기를 가져 눈인사를 하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심성을 지닌 꽃이랄 수 있겠다.

고향에서 오면서 딴 쬐그맣고 동그마한 검정 씨앗을 올 봄에 뒤란 그리고 파티오 데크 옆에 심었더니 제 피는 못 속인다고 덩굴손을 내밀어 지주막대를 세워 올라타도록 해 줬다. 대학교에서 목재 해부학을 배울 때 S helix니 Z helix니 하면서 목재 세포의 섬유 주향(走向)을 배우곤 했는데, 이 녀석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치켜 감아 올리는 덩굴 벋음새를 보이며 제 갈 길을 간다. 영락없는 고집쟁이 줄타는 광대 아가씨라고 이름 붙여 준다. 

이곳 여름날이 캘린더상이 아닌 실제 날씨로 길지는 모른다. 이제는 줄타기를 도와주었더니 벽돌벽도 기어 올라가 내려다보며 올려다보는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름 Morning Glory에 걸맞게 수줍은 듯이 동그마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예요^^” 인사를 나누는 찬연(燦然)한 아침을 맞고 있다. 줄타기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하트형 녹색 이파리를 리본처럼 달고 꽃을 내게로 던지는 공중 곡예사(曲藝師)가 되었다. 그 꽃을 가만히 보면 여느 꽃에서 볼 수 있는 꽃점 대신에 암술, 수술이 뚜렷하지 않아 충매(蟲媒)를 하고자 그 중심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인지 다섯 방사모양의 줄무늬(Streak)를 지녀서,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다섯개의 잎이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 통꽃으로 별 모양의 아기씨이다.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와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이 오버랩되어 들려온다. 나팔꽃에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은 무색하다. 한나절만 피는 데 그녀 앞에 무슨 헌사(獻詞)를 한단 말인가!

 

나의 나팔꽃

1首

사는 건 오며 가며
눈인사 나누는 것

물 건너오면서
나팔꽃씨 가져왔지

데크 옆 덩굴 나팔꽃 
눈인사는 언제 할꼬

2首

아침에 삽작문에 
왠 아이가 붙어 있어

누군가 다가가서
그 이름을 물었더니

제 이름 모닝 글로리
아침인사 하데요

3首

섬돌에 서리 내려
기러기 날아갈 제

울담에 기대어서
떠나쟎는 여인 있어

가만히 다가가서는
안아줘요 살포시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