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이 있는 창 71 - 잎갈나무 잎 비 내리는 날
나무와 꽃이 있는 창 71 - 잎갈나무 잎 비 내리는 날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2.1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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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서진석 박사 ·시인

낙엽송
낙엽송(落葉松)! 가을이면 다른 상록의 침엽수와 달리 잎이 떨어진다고 붙여진 잎갈나무, 이깔나무의 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의 친정 산과원에는 지금은 택벌(擇伐)로 베어지고 듬성듬성 서 있는 왼쪽으로 난 저지대-지금은 약초재배원으로 조성되어 있음-에 낙엽송과 흡사하게 큰 낙우송(落羽松) 들이 있었다. 이 나무는 깃털 같은 잎을 가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가을이 되어 단풍 들고 잎이 지는 과정이 다르다. 낙엽송은 전나무처럼 잎이 짧고 노랗게 물이 들어 갈변(褐變)하는데 낙우송은 깃털 같은 잎이 노랗게 물 드는 것을 뛰어 넘고 갈변한다. 

산림교육원의 소리봉으로 가는 뒷산에도 낙엽송이 꽤 많이 있어 가을과 겨울 사이의 모양새를 볼 수 있었다. 더러는 고사목도 있어 하늘 향해 구도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가을날 바람에 흩뿌리는 잎 비와 겨울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떨어진 짧은 바늘잎이 잃지 않고 안겨주는 특유의 향긋한 향(精油)을 잊지 못하겠다. 

고향 부황댐을 버스로 찾아 가면 댐 주변 낙엽송이 노랗게 물이 들어 더러는 물에 제 그림자를 늘어뜨려 반겨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연구시절 단골이 되어주던 낙엽송! Japanese Larch라고 불리우는 이름이 싫어 슬며시 그냥 Larch라고 논문에 써보던 게 생각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이름의 낙엽송들이 있다. 잎갈나무, 이깔나무의 우리 이름도 가지고 있는 이 나무는 정겹고도 쓸모있는 나무(用材)라고 하고 싶다.   

어쨌거나 이곳 세미트리에서 대하는 낙엽송들! Japanese Larch(LarixKaempferi Carriere, Pinaceae), European Larch(Larix decidua Mill), Eastern Larch(Larixlaricina(Duroi)K.Koch)가 눈에 들어온다. 토양, 풍토가 안 맞는지 이 곳에서도 수세(樹勢)가 좋지 않게 자란 모습을 대하면 마음이 아프다. 작은 솔방울 모양 다닥다닥 단 열매처럼 동그란 구과(毬果)를 씨앗으로 가진 나무! 그러나 수명이 다 하는 날까지 서 있어야 한다는 삶의 당위성, 의무감 같은 것을 지닌 듯해서, 그것이 우리네 삶을 보는 것 같아 처연(悽然)하고도 숙연(肅然)하지 않을 수 없다.

 

잎갈나무 잎 비 내리는 날

이 생명 다 하고 
바람에 불리어 가는 날엔

봄의 꽃 비 같을까
가을의 잎 비 같을까

어느 시인은 아카시아를 좋아하고
어느 시인은 구상나무를 좋아했다는데
나는 무슨 나무이고 싶을까?

다만 쓸쓸한 어느 가을 날
노오란 제 자취를 안고서
홀연히 잎 비 되어 떨어지는

떨어져서도 향기를 안겨주는
그런 향기를 안겨주려는

나무가 하올로 되고 싶다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